길을 걸었다.
처음 보는 중3 여자아이와 둘이서 동행이 되었다.
좋은 프로그램이 있어 동행자로 참여했다. 아이는 말도 표정도 없는 무채색과 같은 느낌이다.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잠깐 산책처럼 여럿이 걷는 일정으로 들었다고 한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안전에 대한 주의가 계속되고, 성찰 단절 회복 이라는 낯선 단어가 반복되자 뒤로 물러선다. 잘못 온 거 같다면서..
능숙한 상담샘들의 설득으로 '그럼, 우선 해 보겠다.'는 의지를 끌어냈다. 버스에서 아이와 짝이 되어 1시간 30분 동안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라는데... 아이는 창밖만 우두커니 본다. 몸을 돌려 가장 친절하고 따뜻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이야기거리를 꺼낸다. '요즘 주로 뭘하며 지내니?' 나라면 뭐라고 답할까. 일하고 드라마 보고, 영화 보고...딱히 거리가 없다. 그런데, 아이는 '첼로 연습을 해요.'라며 예고에 입학 예정이란 말까지 한다. 좋아하는 첼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우린 살짝 가까워진 듯 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나와 아이는 함께 머물 방을 배정 받는다. 침대를 정하고, 가져온 배낭을 내려놓고, 먼저 별명을 짓는다. 아이는 다시 처음 만났을 때 표정으로 '그냥 내 이름으로 하면 안되요?'묻는다. 별칭을 짓는 게 중요하다고 했는데.. '한 번 생각해보자. 00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첼로 어때?' 반응이 없다. '그럼, 요즘 연주하는 곡이 '엘리제'라고 했잖아. 엘리제 어때?' 마지못한 듯 그러라고 끄덕인다. 이름표에 별명을 쓰고 어울릴 그림을 그린다. 이제부터 아이에게 '엘리제님'이라고 부른다.
정해진 시간이 되어 밖으로 나가려고 신발을 신는 순간, 아이가 주저 앉는다. 다리에 쥐가 났단다. 쭈그려 앉아 아이의 양쪽 종아리를 주무른다. 민망한 듯 괜찮다는 아이에게 엄마 버전으로 '괜찮아. 이렇게 풀어줘야해'라며 있는 힘껏 딱딱한 종아리와 발목을 마사지한다. 서서히 굳은 근육이 이완된다. 살짝 미소를 보이는 아이와 기분 좋게 출발지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