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원칙으로

라지 가트(Raj Ghat)를 기억하며...

by 정상환


오랜만에 영화 '간디'를 다시 보았습니다.

Mohandas Karamchand Gandhi (인도, 1869.10. 2 ~1948. 1. 30)

1982년작으로,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남우주연상 등 8개 부문을 휩쓸었던 명작입니다.

세 시간 넘는 러닝타임 내내 수만 명의 엑스트라가 등장하는 대작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벤 킹슬리의 연기는 ‘간디의 부활’이라는 찬사를 들었습니다.

비폭력과 무저항의 정신으로 제국의 굴레를 벗겨낸 한 인간의 여정이, 감독 리처드 아튼버러의 치열한 손길을 통해 고스란히 감동으로 전해집니다.


간디만큼 굴곡 많은 삶을 산 이도 드물 겁니다.

그럼에도 ‘인류의 양심’, ‘위대한 영혼’, ‘국부(國父)’라는 수식어들이 여전히 그를 따라다닙니다.

아인슈타인은 간디의 피살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죠.
아마도 후세 사람들은 이런 인물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을 걸어 다녔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Raj Ghat 간디의 유해가 화장된 추모공원으로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단상 정면에는 "오, 라마신이시여!"라는 간디의 마지막 말이 새겨있다.

오래전 한인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인도 뉴델리 야무나 강변의 간디 추모공원 ‘라지 가트(Raj Ghat)’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곳의 꺼지지 않는 불꽃은 간디의 정신이 지금도 세계인의 가슴속에 살아있음을 보여줍니다.

아직도 세계의 지도자들은 물론, 많은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죠.


무엇보다 아직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입구 대리석에 새겨진 간디의 경고입니다.


“Seven Social Sins” : 일곱 가지 사회악


Politics without Principle : 원칙 없는 정치

Wealth without Work : 노력 없는 부
Pleasure without Conscience : 양심 없는 쾌락
Knowledge without Character : 인격 없는 지식
Commerce without Morality : 도덕 없는 상거래
Science without Humanity : 인간성 없는 학문
Religion without Sacrifice : 헌신 없는 신앙


간디의 경고가 어찌 인도와 과거의 문제이겠습니까?

지금의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이 일곱 가지가 하나같이 낯설지 않습니다.

시대를 초월한 거울 같지 않나요?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의 공공선은 사라진 지 오랜 것 같습니다.

절차적 정당성보다 무조건 이겨야 하는 저열한 승부만이 남았습니다.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서라면 반칙이면 어떻고, 심판의 멱살을 잡으면 어떠냐는 몰염치뿐이죠.

축구장에 난입한 훌리건이나, 축구장에서 농구하는 훼방꾼이나 관중은 아랑곳하지 않는 꼴이죠.

헌법과 법률 등 원칙이라는 것이 ‘적용의 기준’이 아니라 ‘굴절의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명분도 책임도 뒤로한 채, 변검(變臉)처럼 얼굴을 바꾸며 포커페이스로 버티고, 권모술수를 서슴지 않습니다.


그뿐인가요?
노력 없이 부를 얻고자 편법과 사행(射倖)이 판치는 풍조,

순간의 쾌락에 몰두하다 몸과 마음을 파괴하는 중독과 방종,

존중보다 경쟁을 먼저 배우는 교육,

창의와 도전 없는 무기력,

정정당당이 사라진 경제·언론·학계 등의 사술과 비겁함.


간디가 지적한 일곱 가지 사회악이 우리를 맴돌지 않나요?


물론, 시대마다 혼돈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혼돈은 유난히 가볍고 경박합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분노하고, 너무 빨리 잊으며, 너무 자주 남 탓만을 합니다.

그것이 사회적 퇴적이 되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체념으로 이어집니다.


간디는 제국의 폭력에 맞서 싸우면서도 상대를 증오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무저항주의는 무기력한 체념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근원적 신뢰에서 비롯된 용기였다는 생각입니다.
그가 경계한 ‘일곱 가지 사회악’은 결국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들입니다.

신뢰가 무너지면, 아무리 경제가 성장하고 기술이 발전해도 우리의 힘든 삶은 계속됩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법과 규제가 아니라, 기본을 지키려는 양심과 절제겠죠.
정치의 원칙, 공정한 성취, 경제의 도덕, 모두의 행복, 정의의 지식, 학문의 인간성, 종교의 헌신 등,

그 당연한 것들이 무너질 때, 더 이상 살만한 사회일 수 없습니다


간디의 묘소의 꺼지지 않는 불꽃을 떠올립니다.
그 불꽃은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서 꺼지지 않기를 바라는 작은 바람일 겁니다.



에필로그 : 다시 원칙으로


30년 전 라지 가트에서의 소회가 지금도 매일반 변하지 않은 것이 서글픕니다.


간디가 말한 ‘일곱 가지 사회악’은 시대를 초월한 경고입니다.
그가 살던 식민지 인도와 오늘의 한국은 전혀 다른 환경에 놓여 있지만,

인간 사회를 좀먹는 병증은 의외로 비슷합니다.

정치의 무원칙, 노력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지식, 도덕 없는 상거래,

인간성 없는 학문, 헌신 없는 신앙….
어느 하나, 지금 우리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위기와 혼란의 원인을 제도나 구조 탓으로 돌립니다.

그러나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고, 그 사람들을 지탱하는 힘은 제도보다 ‘원칙’이라는 생각입니다.

원칙이 흔들리면 제도는 껍데기일 뿐이며, 원칙이 서 있으면 혼돈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습니다.


원칙이 무너지면 승복이 어렵고, 승복이 어려우면 갈등은 폭발되고, 분열과 증오만이 남습니다.


지금, 다시 원칙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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