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니 그렇더군요. 진심 어린 한마디
가을은 묘합니다.
끝과 시작이 동시에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황금빛 들판은 수확의 계절을 노래하지만, 나무 끝 잎사귀는 곧 떨어질 것을 예감합니다.
그래서 가을은 화려하지만 쓸쓸하고, 풍성하면서도 차분하죠.
우리가 사는 것도 그렇지 않나요?
무언가를 얻는 동시에 잃고, 또 다른 길 앞에 서게 됩니다.
젊은이들에게 가을은 유난히 실감 나는 계절일 겁니다.
사회로 첫 발을 내딛는 준비를 하거나, 또는 여전히 갈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이들도 있겠죠.
누군가는 성취의 기쁨 속에 있고, 또 누군가는 방황의 시간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경쟁이란 생태계를 이루는 원리인 것을...
치열하지 않은 경쟁은 없습니다.
모두가 승자일 수 없죠. 모두 성공할 수 없습니다.
승자와 패자, 성공과 실패는 나눠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렇게만 얘기하는 것은 박절합니다.
꼭 그렇지도 않구요.
위안의 말을 건넨다면,
이 승자와 패자도 지금 이 순간의 결과이며, 지금의 자기만족에 불과합니다.
그때뿐입니다. 고정불변이 아니죠.
지금 싸움에서 이겼다고 살아남는 것은 아닙니다.
경쟁의 승자만이 결국 살아남는다는 것은 승자의 치기입니다.
설사 지금, 경쟁에서 밀렸다 하더라도 생존여부와는 상관없습니다.
살아보니 그렇지 않은가요?
자이언트 판다는 번식력이 낮은데도 빙하기를 넘겨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사람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곰과의 자이언트 판다는 원래 육식 동물이었다 합니다.
하지만 다른 동물과의 먹이경쟁에서 밀려 높은 곳으로 이동했고, 대나무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고기 먹다 풀만 먹으니 얼마나 딱했를까요?
판다는 대나무를 잘 소화하지 못해 영양이 충분치 않았죠.
그래서 온종일 대나무를 먹고, 잠자며 움직임을 최소화했습니다.
활동성이 낮아지게 된 이윱니다.
거기다 고산지대에는 맹수들이 드물었기에 느릿느릿한데도 다른 맹수의 먹잇감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빙하기가 왔을 때, 이 대나무는 얼어 죽지 않았습니다.
대나무는 얼음 속에서도 피어났고, 판다는 결국 살아남았습니다.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으며 그 위세를 떨치던 매머드, 스밀로돈, 다이어 울프 등 많은 고대 육식동물이
기후변화(빙하기), 전염병 등의 이유로 멸종 됐는데 말입니다.
다른 눈에는 무기력해 보였을지 몰라도, 판다에겐 분명 생존의 지혜였습니다.
가수 임영웅이 발라드 생태계에서의 경쟁만을 고집했다면 지금의 트롯 황제는 있었을까요?
아이리버, 코닥, IBM, 노키아, 블랙베리... 이들 기업은 왜 존재감을 잃었을까요?
즉 지금 싸움에서 이겼다고 살아남는 것은 아닙니다.
판다가 살아남은 이유는 자신의 약점을 받아들이고 적응했기 때문입니다.
성난 파도 앞에 맞서겠다고 버티고 서있으면, 파도가 집어삼켜 포말로 사라집니다.
사라지면 그뿐입니다. 어리석죠.
바람의 방향도 보고, 조류의 세기도 가늠하며 파도에 올라타야 합니다.
그러면 파도 위에서 멋지게 서핑할 수 있습니다.
판다는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살아남는 힘은 강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맞게 자신을 바꿀 줄 아는 유연함에서 온다"라고.
비록 지금의 승자는 아닐지라도 결국 미래에 살아남는 생존의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지극히 개인적 경험이지만,
치열하게 경쟁을 치르며 예전 잘 나가던,
1등 하던 나의 친구들도 그저 평범해진 지 오랩니다.
살아보니 그렇지 않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