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텐조 Jun 09. 2024

프로메테우스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298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이백구십 팔 번째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여러 신들이 존재한다. 제우스부터 아테나까지 각 상황에 맞게 혹은 특정한 능력과 위치에 있는 신들이 인간을 돕거나 혹은 인간을 철저히 무시하기도 한다. 그들만의 리그처럼 보이는 그리스로마 신화 속 신, 그들도 사람과 같은 불완전한 존재처럼 친근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여러 신들이 서로 질투하고 별의별 감정을 가진채 배신과 암투를 벌이는 가 하는 등 인간 사회와 다를 바 없는 관계를 가진다. 



제우스 몰래 인간에게 다시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 금단의 능력 혹은 신만이 가질 수 있었던 불을 다루는 능력을 인간에게 선사한 프로메테우스는 마치 에덴동산의 뱀과 같이 신과 동등해지고자 했던 인간에게 크나큰 선물을 준 셈이다. 서사에서 볼 수 있듯 수렵생활을 하던 인류가 불을 다루기까지 험난했던 시간과 여정에서 불을 다루는 것이란 위대한 신의 능력에 필적했던 것이다.


혹자는 불에 대한 의미를 다양하게 해석하기도 한다. 프로메테우스가 예지의 능력이 있으니 사실 그건 인간에게 신에 필적한 또 다른 능력을 주었다는 문학적 표현이라고도 하는데 불이 되었든 또 다른 능력이든 결국 인간을 위한 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이 중심이 되는 스토리가 아닌 파격적인 인간 중심적인 인본주의적인 신이라는 측면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여러 사람들의 머릿속에 인상 깊게 남아있다.


중세시대의 신본주의에 대한 반감으로 인간 찬가를 외치던 음유시인들처럼 프로메테우스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으로 인간들을 불쌍히 여겨 불을 훔친다. 하지만 그 결과는 끔찍하리만치 고통을 받아야 했고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제우스에게 받아야 했다. 이런 스토리에서 중요한 건 프로메테우스가 전해주었던 불이라던지 아니면 신에 필적할만한 위대한 능력이 아니다.




프로메테우스의 스토리에서 진정 높게 봐야 하는 것은 그가 인간을 어여삐 여겼던 그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인간을 사랑하는 인애주의적 사상이 그가 전해주었던 그 무언가보다 더 위대한 것이었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가혹하게 형벌을 내리든 혹은 평소에 변덕을 떨든 그는 신들의 왕이었지만 타이틀만 높았을 뿐 인간들을 그리 이뻐하지도 않는다. 


만약 이를 우리에게 그대로 대입해 본다면? 마음을 움직이는 서사가 있다면 그것은 프로메테우스의 서사일 것이다. 자기의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인간을 위해 한 몸 바쳤던 그가 모든 것 위에서 군림하려는 제우스와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누군가를 위해 진심으로 위험을 감수하면서 까지 행동하는 존재란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마치 장 발장의 혹독한 현실에서 얼어버렸던 마음을 녹여버린 미리엘 신부의 선행처럼.


프로메테우스란 제목의 SF영화가 있듯이 그의 이름은 파격적인 것이다. 마치 기본 질서를 부정하고 일탈로 보이는 듯한 금단의 지식과 관련있는 듯한 느낌이 들고, 세계관을 신의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끌어내리는 듯한 그의 모습에서 불보다 뜨거웠던 인본주의적 선행을 느껴볼 수 있다.


"이 촛대는 비록 은이지만 나에게는 금이자 다이아몬드이며, 꽂아둔 초를 거룩하고 큰 초로 변화시키는 촛대요. 이 보물을 내게 선물하신 그 분께서는 천국에서 내 모습에 만족해하시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모르겠소만, 내 할 일은 다 한 것 같소" -장 발장-

이전 22화 호다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