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나에게 집중하는 법
요즘 아침마다 일어나서 세수와 가글을 하고 일기를 쓴다. 이 일기는 아무도 볼 수 없다. 나만 알아야 하는 비밀을 쓴다. 무슨 영감에 대한 글도 아니고 어떤 생각으로 인해서 쓰는 글도 아니다. 그저, 그냥 펜이 써지는 대로 마음의 글을 쓴다. '쓰고 싶은 대로' 보다 '써지는 대로'의 표현이 더 맞는 나만의 글을 쓴다.
최근 들어 아는 작가님들이 기상하자마자 하는 일이 보이는 글이 아닌 나만 보는 글을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좀 의아했다. 글도 잘 쓰는 양반들이 굳이 보이는 글을 쓰지, 자기만 보는 글을 쓰는 게 애당초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말이다. 가끔 낙서처럼 쓰는 글은 있어도 잠을 더 잘 수도 있는 시간에 굳이 매일 아침마다 나만 간직할 글을 왜 쓰는지 의문이 들었다.
의구심은 있지만 나는 남들이 좋다는 건 다 해보는 성향이다. 특히 좋아하는 작가님들이 이러한 루틴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하니 밑져야 본전이고 굳이 나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시도해 봤다. 요즘 내게 최애인 이연 작가님이 추천하는 노트와 펜을 구입해서 일기를 쓴 지 한 달 정도가 되었다. 주말 하루 이틀 정도는 빼고 평일에 쭉 일기를 쓰며 하루를 시작했다.
매일 글쓰기 모임을 60여 명의 사람들과 2분기 동안 하고 있어 글쓰기 인증을 위해서라도 블로그에 글을 쓰며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하루를 글로 시작하는 나름 글 부심이 있었지만, 남들에게 보이는 글을 쓰는 것과 진짜 나만 아는 글을 쓰는 건 결이 많이 달랐다. 평소에도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비밀 일기를 쓴 뒤로는 나도 모르는 '나'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렇게까지 창피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마음이 든다고? 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도 가면을 씌우고 있던 게 아닐까. '나는 이런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어야만 해!'라며 그 누구도 나를 억압하지 않았음에도, 내가 나를 억제하고 통제하고 있었다. '나'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은 내 남편, 친구들이 아니라 나여야만 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요즘 세대를 불문하고 '나'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굉장히 커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보이는 내 모습으로 살고 있다가 진짜 위기에 닥쳤을 때 나오는 본인이 알던 자신의 모습과 다를 때 당황스러워한다. 진짜 나는 누구일까에 대한 의문이 커지면서 다 큰 성인이 나 자신도 모르고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자각하는 순간 자존감이 떨어지고 인생의 방향성도 잃는 것 같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요즘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을 소개하는 MBTI에 목말라하고, 사주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게 일맥상통하는 게 아닐까.
물론 나 자신을 알기 위한 노력으로 MBTI든 사주든 심리학이든 점성학이든 뭐든 동원해서 알아보는 건 나를 위한 건강한 시도이다.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보다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를 먼저 알면 내가 어떠한 인간인지 알게 되는 것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비밀 일기를 써보니 내 마음은 그 어떤 누구도 나만큼, 나 이상으로 알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복잡 다사다난한 세상에 내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산다면 내가 원치 않을 수도 있는 일에, 남들이 정해준 기준과 사회에 휩쓸리며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왜 화가 나는지, 왜 슬픈지, 나는 어떨 때 기쁘고 행복한지 정도는 정확히 알아야 세상이 다 만족스럽지 않아도 살아갈 힘을 얻는 것 같다.
아직 일기를 쓴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일기장 한 장 한 장이 온전히 '나'라는 걸 알게 되니 눈뜨는 하루하루가 감사하다. 그리고 그날만큼은 어떠한 위기가 닥쳐도 잘 살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 이런 날들이 쌓이다 보면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내가 가야 할 길도 저만큼 펼쳐져 있을 것 같다.
나만의 비밀 일기 쓰기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