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반아 미안하다
작년까지 멀쩡했던 골반이 올해 초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그냥 풀어주면 되겠지'라는 생각에 골반 스트레칭 유튜브로 운동해서 한동안 괜찮았다. 그러던 골반이 요 며칠 아프다고 말썽을 부린다. 특히 오른쪽 골반이 쑤신다. 뭐랄까. 오른쪽 다리에 성장통이 다시 찾아온 기분? 서른두 살에 성장통이라니 말도 안 된다.
운동을 즐겨하는 성격이 아니다. 해야 하는 건 알기는 알아서 종종 걷기와 달리기를 하지만 많은 운동 종목 중에 걷기와 달리기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효율을 보고 싶어 하는 성향이다. 이런 걸 야매라고 하나. 운동하려는 마음가짐이 기본적으로 안 되어 있다.
지난 10월 골반 통증도 점점 심해지고 몸도 뻐근하여 집 근처에 있는 필라테스를 등록했다. 2개월 개인 수업으로 끊었다. 1개월은 너무 적고 3개월은 너무 먼 느낌이라 2개월이 적당하다 싶었다. 살면서 3개월 등록해서 끝까지 한 적이 딱 한 번밖에 없다. 그래도 하기는 했네.
그때 등록한 필라테스가 이제 2개월이 다 되어간다. 체형교정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인 노력이 더 필요한 부분이고 2개월로 눈에 띄는 변화에 욕심을 낸다는 것은 어림 짝도 없는 일이다.
32년 동안에 쓴 골반을 생각해 봤다.
중고등학교 때 공부한답시고 매일 앉아 있었다. 잠도 책상에 엎드려 앉아서 잤다. 그때는 공부를 안 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대입을 앞둔 고3 때 깨달아서 결국 원하는 대학은 못 갔지만... 이후 공무원 시험, 학과 공부, 세무사 시험 등 각종 시험공부를 줄곧 앉아서 했다. 회계세무학을 전공한 터라 직장에서도 회계 업무를 줄곧 했다. 이 또한 계속 앉아서 하는 일이었다. 퇴사를 하고 1년 정도 지난 지금 이 시간에 글도 앉아서 쓰고 있다. 최근에는 동양학과에 입학하여 글 쓰는 일 외에도 앉아서 하는 공부가 추가되었다.
32년 중 20년은 꼬박 앉아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 같다. 아플만하다. 스트레칭하는 시간도 아까워했다. 어릴 때는 아픔을 느끼지 않았으니 귀찮아서 더 안 했을 것이다. 평소 몸을 풀어주지 않았던 게 골반을 더 혹사시켰다. 지금은 골반 통증이 주 통증이긴 한데 목과 어깨와 허리 또한 안 봐도 비디오다.
올해 초에 골반 스트레칭으로 했던 동작을 다시 해보니 시원찮았다. 잘 되지도 않은 동작에 아픔은 컸다. 대체 올해 골반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후회가 밀려든다. 아니다. 그동안 조금씩 쌓였던 아픔이 이번에 폭발한 걸 거다. 골반은 계속 신호를 보냈는데 내가 모른 체 지나갔다. 그런 날 중에 하루라도 제대로 풀어주기만 했다면 지금 이렇게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제 필라테스 선생님한테 특별히 오늘은 골반 교정 위주로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 상황을 인지한 선생님은 바로 내 골반을 이리저리 틀어보며 사태를 파악했다. 확실히 오른쪽 골반이 육안으로만 봐도 더 올라가 있었다. 틀어진 골반 때문에 몸 전체 균형이 맞지 않다는 걸 거울로 확인했다. 오른쪽 골반을 끌어내리는 자세를 반복하며 왼쪽 골반과 균형을 맞추어 나갔다. 골반이 조금씩 맞아 들어가고 가벼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휴' 잠시뿐일 거라는 걸 알면서도 가벼워진 골반에 마음도 잠시 가벼워졌다.
집으로 돌아오고 유튜브 영상을 보며 골반 스트레칭을 했다. 필라테스 후 조금은 좋아졌지만 여전히 아프고 뻐근하다. 그동안 아픔이 있었을 텐데 무심코 넘어갔던 많은 순간들을 반성한다. 앞으로 계속 앉아서 하는 글쓰기와 동양학 석사 학위를 목표로 해서 앉아 있는 삶을 살 텐데 큰일이다. 이번엔 절대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런 게 바로 안전불감증 같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여러 날 때문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칠 뻔했다. 지금이 마지막 골반 통증의 신호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운동할 것이다. 아직 서른두 살이다. 벌써부터 아프면 안 된다.
매일 화분에 신경 써서 햇빛과 물로 사랑을 주듯, 내 골반에게도 매일매일 아낌없이 사랑을 주어 골반의 균형을 맞출 것이다. 오죽 아프면 이 골반에 대해 글을 썼을까 싶다. 그만큼 골반에게 미안하다. 골반에게 이 반성문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