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자리란?
딸아이가 고2다. 피는 속이지 못하는 가보다. 스토리면 환장하는 나를 닮아, 수학은 안중에도 없고 고전 읽기를 사랑한다. 그렇다고 국어를 잘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서양고전을 사랑하는 딸아이가 어느 날 <세일즈맨의 죽음>을 읽고 너무 좋았다며, 나에게 대사를 읽어주었다.
"아뇨! 아무도 나가 죽지 않아요, 아버지! 전 오늘 손에 만년필을 쥐고 11층을 달려 내려왔어요. 그러다 멈춰 섰어요. 그 사무실 건물 한가운데에서 말이에요. 그 건물 한복판에 멈춰 서서 저는, 하늘을 봤어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봤어요. 일하고 먹고 앉아서 담배 한 대 피우는 그런 시간들을요. 그리고 나서 만년필을 내려다보며 스스로에게 말했죠. 뭐 하려고 이 빌어먹을 놈의 물건을 쥐고 있는 거야? 왜 원하지도 않는 존재가 되려고 이 난리를 치고 있는 거야? 왜 여기 사무실에서 무시당하고 애걸해 가며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거야? 내가 원하는 건 저 밖으로 나가 내가 누군지 알게 되는 그때를 기다리는 건데! 전 왜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거죠? 아버지? (월리의 눈을 자신에게 돌리려 하지만 그는 멀리 떨어져 왼쪽으로 간다.)" (2막 말미)
아버지 윌리는 큰 아들 비프에 대한 대단한 기대치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 부모들이 장남에게 갖는 기대치와 똑같다. 이 기대치 때문에 항상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한다. 딸아이가 나에게 이 대사를 연기한 티모시 살라메의 모놀로그를 보여주었다. 딸아이가 왜 나에게 이것을 보여주었을까. 왜.....
딸아이를 공부시키기 위해 별별 방법을 다 쓴 나를 암묵적으로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을까. 이제는 너에게 다 해 주었으니, 선택은 너의 몫, 내 할 노릇은 이제 끝...이라고 말했던 나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일까. 딸아이는 윌리의 큰 아들 비프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했을까. 내 입장은 윌리의 입장인데 말이다.
한 학생의 에세이가 생각난다. 부모는 나에 대해 책임만 져야 할 뿐, 부모의 권리를 내세우면 안 된다고 했던 말. 책임과 권리가 별 개의 문제인가. 분명 이 친구는 부모에 대한 상처가 있다. 관계를 맺는데 상처가 없는 관계가 있을까. 특히 가족 간에 말이다. 한 학기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의 수업에 대한 소견들이 나를 많이 생각하게 만든다. "수업이 재미있고 교수님이 너무 착합니다. 토론 수업이 처음이라 재밌었음. 지루한 수업일줄 알았는데 중간중간에 토론도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좋았어요 정말 재미있는 수업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팀플이 좋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서 좋음." 등등 수업시간에 쓴소리도 많이 했는데 그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충분히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기 때문이 아닐까. 딸아이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까지 말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하도록 하겠다.
고전의 이야기는 살아있다. 나에게, 학생들에게, 딸아이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