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구리 같은 사람?

다 커도 늙어도 청개구리인가.

by giant mom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천성이 떠들썩한 걸 즐기는 남자인지라, 지금껏 매달, 매달, 무리를 하면서까지 대여섯 장씩, 이를테면 감상 단편을 쓰고, 이 잡지에 실어 왔다. 그런데 세상에는 수치심을 완전히 결여한 청개구리 같은 남자가 수두룩하여, (이는 내게 새로운 발견이었다.)..."(『마음의 왕자』, 79) 이 대목이 나 혼자 빵 터져 웃었다. 1930~40년대 오사무 주변에 '수치심이 결여된 귀족 남성들'이 많았던 것 같다. 왜냐면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의 유형이기 때문이다.


어제 강의는 우리 각각이 갖고 있는 그릇된 감정 내지 그릇된 편견에 관해 나누는 시간이었다. 한 조가 "남자들은 늦게 철든다, 군대를 다녀와야지 철든다"라는 편견이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남자들 중에는 철든 남자가 없다. 내 아버지가 그랬고 시아버지가 그러했다. 죽는 순간까지 속이 꽉 차서 상대를 배려한다는 생각이 단 한 번도 들게 하지 않았다. 어른이지만 단 한 번도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감정의 기복이 그 누구보다 심한 사람이 바로 가장의 자리에 있는 남성들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함인지, 아니면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정체성을 동일시하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상대가 스스로를 무시한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다. 남편의 경우도 자신이 매우 배려심 있고 철든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청개구리가 생각날 정도로 항상 반대로 하고 싶어 하는 발칙한 사람이다. 본인만 모른다.


물론 다자이 오사무는 시대의 비극과 아픔을 당대 귀족의 몰락이라는 상징성으로 그려낸다. 수치심을 완전히 결여한 청개구리 같은 남성이 그 시대의 귀족들이라면 누구나 거쳐가야 할 비속하고 퇴폐주의적인 몸부림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문제작이라고 하지만, 잘 모르겠다. "나는 누군가와 결탁해서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나는 언제나 혼자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의 내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믿는다"(79) 그는 세상과 결탁하지 않기 위해 '광적인 번뜩임'으로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나도 그런 글쟁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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