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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안유 Jun 24. 2021

역량강화, 우리도 몰랐던 우리의 힘 발견


쇠 똥 세 바가지가 쌀 세 가마    

  

요즘 <마을 역량 강화 사업>을 하느라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광대 2리와 흥천면 상대 1리를 참새 방앗간 가듯 자주 간다. 또 양평군 지평면도 기초 생활 거점지 육성사업의 일환인 주민 역량 교육 때문에 내 집처럼 들락거린다. 정(情)만 있으면 천 리 길도 멀지 않다더니 교육과 회의가 있는 날이면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두 지역 모두 가는 길에 상습 정체 구간이 많아 출발할 때는 시간을 길게 잡는다. 여유 있게 도착해서 그날 수행해야 할 일과를 다시 한번 점검하기 위해서다. 교육 시작 전에 마을 사업 추진위원회와 이장님을 만나 마을 주민이 원하는 현안과 문제점은 없는지 미리 알고 교육에 임하면 준비해 간 프로그램이 주민과 밀착돼서 참 좋다. 미리 서두르고 미리 점검하는 일은 이 사업을 하면서 배운 아주 좋은 역량이다.     


농사는 때를 놓치면 안 되기 때문에 마을 교육 일정을 잡을 때는 주민의 농사 일정과 보폭을 맞춘다. 삼사월은 굼벵이도 석 자씩 뛴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농작물을 파종하고 이앙하는 시기인 음력 3월과 4월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또 모내기, 보리 베기 등이 기다리는 5월과 6월은 “오뉴월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말이 딱 맞아떨어진다. 손님이 오면 일할 시간을 뺏기니 호랑이보다 더 무서울 수밖에. 찔레꽃 필 때 딸의 집에 가지 마라는 말도 그냥 생긴 말이 아니라는 걸 마을 역량 강화 사업을 통해서 배웠다.      


교육에 참여하시는 주민분들의 평균 연령이 일흔 정도 되신다. 70이면 청년 축에 드니 연륜에서 묻어 나오는 주민의 한마디 한마디 말씀이 삶의 교과서다. “노인 하나가 사라지는 건 박물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옛말이 실감 난다. 얼마 전 젊은 귀농인이 거름을 잘 못 보관해 퇴비로 쓸 수 없다고 하자 어르신께서 대뜸 “쇠 똥 세 바가지가 쌀 세 가마”라고 하셨다. 말뜻을 여쭤보니 쇠똥이 쌀만큼이나 중요했다는 얘기다. 화학 비료가 없던 옛날에는 쇠똥을 모아서 논 거름으로 썼고 얼마나 쇠똥을 잘 주었느냐 따라 벼 수확량이 달라지니 “쇠 똥 세 바가지가 쌀 세 가마”라는 말이 나왔던 것. 어르신들이 툭툭 던지시는 한마디 한마디에서 느껴지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마을 사업을 하면서 제대로 배우고 있다. 



지평 갈 때마다 들르는 지평면사무소 앞 작은 찻집. 이 덕분에 지평의 향기를 더 짙게 간직할 수 있어 참 좋다. 

 

테스 형보다 위대한 어르신들   


마을 역량 강화 사업의 핵심은 주민을 행복하게 해 드리는 거다. 어르신들이 살아온 인생을 되짚어 보면 우리 대한민국 역사 그 자체다. 일제강점기 말엽에 태어나 해방을 맞고 나라를 되찾은 기쁨도 잠시 참혹했던 6.25 한국 전쟁을 겪었던 분들이다.  

북한 공산괴뢰 집단의 불법 남침 이듬 해인 1951년 2월 13일부터 2월 15일까지 중공군 5개 사단이 인해전술로 공격해 왔을 때 미 2사단 예하 23 연대 전투단 및 불란서 군 대대 병력은 백병전을 감행하여 현지 사수 및 적을 분쇄 격퇴하였다. 그 전공과 전몰 영령의 명복을 빌고자 이 비를 세웠다 - 지평지구 전투 전적비      


이 전투를 목격한 지평면 어르신들 얘기를 들어오면 눈물겹다. 전쟁이 끝난 후의 이야기도 처절하다. 골짜기에 탄피를 주우러 갔다가 수류탄이 터져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적도 다반사. 사방에 널려 있는 해골도 무섭지가 않았다.   

  

어르신들의 어린 시절엔 바가지에 받았던 배급 분유와 옥수수죽, 그리고 꿀꿀이 죽의 버터 냄새가 배어 있고 청년 시절엔 돈 벌러 서울 갔던 앵두나무 처녀와 삼돌이, 에레나가 된 순이, 중동 사막 기러기 아빠가 있다. 장년 시절엔 집을 사고 논밭을 늘려가며 자식들 가르치느라 모두가 활활 타오르는 연탄불이었다. 아버지 술잔엔 눈물이 반, 어머니 치마에는 콧물이 반, 그렇게 살아오신 덕분에 1960년대 아프리카 가나와 비슷했던 우리의 삶이 기적을 이뤄 세계 강대국의 반열에 선 것이다.   

    

그런데 어르신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잘 모르고 계셨다. 역량 강화의 첫걸음은 어르신들 가슴속에 고여 있는 자긍심을 끌어내어 자랑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훈나가 그토록 외치고 있는 테스 형 할아버지가 와도 해결하지 못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것만으로도 어르신들은 위대하다. 그 위대한 역사 이면에 다소곳이 숨어 있는 추억을 시(詩)로 엮어 보면 어떨까? 어르신들을 시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마을 시집(詩集우리가 몰랐던 우리 힘 

 

삼사월은 굼벵이도 석 자씩 뛴다고 

그러니 오뉴월 손님은 호랑이보다 더 무섭지 

그러기에 찔레꽃 필 때 딸의 집에 가지 마라 했잖아 

그리고 거름 귀한 줄 모르면 농사 망쳐 

쇠 똥 세 바가지가 쌀이 서 말이여    

   

농사철에 어르신들이 툭툭 던지시는 옛 속담을 이어 붙이니 명시(名詩) 못지않다. 입에서 입으로 회자는 명시는 모두가 삶에서 우러나온 진득한 말이다. 지평면 옥현2리 어르신들은 말씀마다 시(詩)다. 말은 입 밖에 나오면 흩어진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어르신들의 말씀을 시로 승화시키자고 했다. 당연히 어르신들은 어려워하셨다. 까마득하게 아득하고 먼 옛날, “오륙십 년 전에 잠깐 배웠던 시를 우리 보고 쓰라고?” 어르신들은 손사래를 치면서 시 못 쓴다고 하셨다. 그런데 가만 보니 내심 자신의 시심(詩心)을 자랑하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강사가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 안도현>를 소개했다. <너에게 묻는다 /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시구절을 전하자 어르신들 눈빛이 달라졌다. <풀꽃 1–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를 대하더니 미리 나눠드린 종이에 일필휘지 시를 쓰신다. 그렇게 해서 옥현1리 마을 시집 <우리가 몰랐던 우리의 힘>이 나왔다. 이상관 마을 이장님부터 주민 한 분 한 분이 쓰신 시(詩)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절창(絶唱) 명불허전이다.      


우리 속담에 ‘잘되는 집은 가지 나무에서 수박이 열린다’는 말이 있다. 어떤 씨앗을 뿌리든지 간에 열매가 잘 열려서 부자가 된다는 뜻이다. 마을 주민이 마음을 합쳐 작지만 알찬 마을 시집을 낸 옥현2리는 역량이 강화된 부자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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