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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은 홍시가 된다 Jan 10. 2024

외국어 습득에 관한 짧은 고찰

경험은, 쓰다, 써.


타국에서 언어가 안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어려움을 야기할 것이다.

이를테면 친한 친구를 만들기 어려울 것이며, 내가 말을 꺼낼 때마다 상대방의 당혹스러움도 함께 경험해야 할 것이다.

숨죽인 정적, 의미를 이해하느라 바빠진 눈알들, 더 이상 나와는 이야기를 이어나가지 못하겠다고 판단한 채 결국 등을 돌리는 장면들과 수없이 마주해야 할 것이다.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아다치구립중앙도서관에서 내려다 본 어느 날의 풍경. 일본은 하늘이 참 크다 못해 장엄하다.


앞으로 계속 고백하겠지만 필자는 일본어를 잘 구사하지 못한다. 직장에서도, 일본 사람들과의 모임에서도 나는 말을 제대로 못해 상대방을 당황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쿄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끊임없이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영업 일이다.


언어도 안되는데 왜 굳이 외국에 나가서 사는 삶을 선택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해보자면 두 가지가 있다.

'진짜' 외국어 실력 향상과 우물 밖의 세상을 경험하는 것.


상추가 한 팩에 75엔(약 500원)!



1. 외국어는 공부로 실력을 늘리는 게 아니다.

내가 느낀 바, 언어는 교과서가 아니다. 네이버 사전도 아니다.

(네이버 사전에 없는 단어들이 너무 많다는 걸 일본에 와서 알게 되었다.)

교과서 습득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심지어 유튜브나 각종 영상 매체를 통한 외국어 노출도 어느 레벨까지만의 이야기다.

특히 소통에 있어서는, 그 나라의 문화나 생활을 실제로 접해보지 않고서야 진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일본인들과의 수다 떠는 자리는 난이도 최상이라고 볼 수 있다.

(차라리 비즈니스 회화가 쉬울 것이다...)


이를 테면, 얼마 전 회사 연수에서 있었던 일이다.

누군가의 취미가 '야구 관람'이었고, 이번 '고시엔(일본고교야구전국대회)'을 보았냐는 이야기가 주류가 되어 뜨거운 이야기꽃이 무르익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디에도 낄 수 없었다. 그 유명한 고시엔이 뭔지조차 제대로 몰랐기 때문이다.

멀뚱히 앉아있는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아무리 일본어를 배우고 말할 수 있다한들, 그 나라 사람들이 무엇을 접하면서 어떻게 느끼고, 살아오고 있는지를 모르면, 현지인들과의 이야기에 끼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농부 분들의 활짝 웃는 사진까지 전시!


2. 더 큰 유니버스를 향해서

"나, 지금 당장은 한국에서 하고 싶은 거 없어!"

한국에서의 대학 졸업을 앞둔 시기, 부모님께 큰소리로 포고(?)한 내가 있었다.

어느 정도 진실이었다.


나의 모든 방향은 어릴 적부터 늘 외국을 향해 있었다.

수능을 치지 말고 워킹홀리데이를 가서 여행을 하고 올까를 진지하게 고민했고(실제로 그랬어도 좋았겠다),

대학에 와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돕는 활동을 했고, 국제학 수업을 몇 번 수강하기도 했다.

코로나 시국에도 유럽으로 교환학생을 다녀 오기도 했다(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젊으니까, 젊을 때는 외국에서 깨지자! 라는 게 나의 주된 가치관이며, 선택의 기준이 되어 왔다. 같은 일을 외국에서도 해내면 해낼 수 있는 영역이 두 배가 되는 게 아닌가.


국내에서는 영어도 일본어도 꽤 잘하는(외국어 3개 구사할 수 있어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해외에 가니 도무지 들리지 않는 그들의 대화, 떨어지지 않는 입이 나와 세트로 묶여다녔다. 아무리 내가 외국인이라지만, 이렇게 되면 소통조차 어려워지게 된다는 게 나를 옥죄어 왔다.

하지만 더 큰 세계를 경험하고 싶어서, 뭔가 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여행이 아닌) 외국에 살아보기로 한 거라면, 그 국가의 언어를 성실히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안 그러면 나처럼 매일 가시덩굴 속에 살게 된다.



아다치구의 시내인 기타센주까지 달려주는 시내버스


나 역시 일본어 습득을 위해 별의별 방법을 동원해보았다. 현재 진행형이지만.

예를 들면, 수 권의 문제집으로 공부해 JLPT 1급을 따 본 것은 물론이며, 일본 영화, 드라마, 일본 유튜브 영상, 일본 라디오를 내내 틀어두거나 자막 없이 보거나. 일본어 회화 학원도 다녀 봤고, 전화 일본어 수업도 해봤고, 지금도 하고 있고, 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복수전공하며 강의를 듣고, 일본 친구들과 대화도 하고, 대화하면서 들은 단어들을 메모하고, 혼잣말을 전부 일본어로 해서 녹음해보고, 처음 듣는 단어들을 네이버 사전에 그때그때 저장(현재 1,900여 개의 단어가 저장되어 있다)해서 틈틈이 외워보고, 노트에 써 보고, 일본 뉴스 기사를 찾아 필사해보고, 일본 도서들도 사 읽어보고, 안 외워지는 단어들은 포스트잇에 써서 이곳저곳 붙여 보고, 일본 노래 가사도 손으로 써 보고, 등등.


아주 더디지만 조금씩 늘고 있다고 믿고 싶다.


다른 언어 하나 좀 구사해보려고 하는데 이토록 품이 많이 든다.


무엇이든, 해보고자 하는 마음은 눈물나게 대단해서 지켜보게 된다.

이참에 나도 나를 응원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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