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화장실 문을 밀자, 낡은 타일 틈새로 냉기가 새어 나왔다. 형광등은 깜빡이며 희미한 빛을 토했고, 세면대 위 거울에는 엷은 김이 서려 있었다. 거울 속의 얼굴은 낯설 만큼 피곤해 보였다. 준호는 손에 묻은 물기를 털다 문득 발끝에 닿는 낯선 감촉에 시선을 내렸다. 물웅덩이 옆, 검은색 가죽 지갑 하나가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는 망설이다 지갑을 집어 들었다. 낡은 가죽 표면엔 세월의 손때가 배어 있었고, 지퍼 손잡이는 반쯤 부서져 있었다. 안에는 카드 몇 장, 구겨진 영수증, 그리고 반으로 접힌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사진 속엔 세 사람의 가족이 있었다. 서로 기대선 채, 햇살 속에서 웃고 있었다. 아이의 눈가에는 작은 빛이 머물러 있었다. 준호는 그 미소를 오래 바라보다 손끝으로 접힌 자국을 천천히 폈다. 어딘가 낯설면서도 묘하게 익숙했다. 그 웃음의 온기를 어디선가 느껴본 적이 있었다.
그때 지하철의 진동이 발밑으로 전해졌다. 멀리서 문이 닫히는 소리, 차바퀴가 금속 레일을 스치는 소리가 터널을 울렸다. 준호는 사진을 주머니에 넣고 밖으로 나왔다. 플랫폼엔 광고판 불빛이 흰색과 붉은색을 번갈아 내뿜고 있었다. 세상이 너무 밝아, 자신이 더 어두워졌다.
며칠 전 사고였다. 번쩍이는 불빛, 짧은 비명, 그리고 영원히 멈춰버린 웃음. 아내와 딸의 이름이 그의 손끝에서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날 이후 세상의 모든 소리는 잿빛 먼지처럼 흩어졌다. 새소리도, 아이의 웃음도, 심지어 자기 심장소리조차 먼지 낀 라디오처럼 불분명했다. 퇴근 후 그는 매일 이 역을 지났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돌아가도 불이 꺼진 집이었다.
그는 늘 같은 자리에 서서, 같은 시간을 견뎠다. 터널을 따라 불빛이 밀려오고,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에겐 내일이 있었지만, 준호에겐 어제만 남아 있었다. 가끔 열차가 들어올 때면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투명하게 느껴졌다. 마치 세상과의 경계가 희미해진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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