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이별을 훔치다

by 꿈담은나현


장마 전날의 오후였다. 눅눅한 바람이 도서관 입구에 맴돌았고, 유리문엔 희뿌연 빛이 물기처럼 번져 있었다. 손에는 낡은 정리 노트를 들고 있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 같은 마음으로 도서관을 찾는 게 일상이었다. 세 번째 줄 창가 자리. 고단하지만 익숙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문을 밀려던 순간, 안쪽에서 흘러나온 통화음이 내 걸음을 붙잡았다. 작은 숨소리처럼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이 오히려 크고 또렷했다. 익숙한 실루엣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검은 후드티에 바랜 청바지, 고개를 약간 숙인 남자. 매일 도서관에서 마주치던, 그 네 번째 줄의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문제집 위에 볼펜을 가지런히 놓고 있었다. 커피 대신 물을 마시고, 말 한마디 없이 하루를 밀어붙이는 사람. 하지만 그날은 자리에 앉지 않았다. 문 앞에 서서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나, 너무 힘들어.”


“3년 동안 기다렸어. 그런데 나도……. 기대고 싶어.”


여자의 목소리는 바람이 찬 유리를 스치는 듯 미세하게 떨렸다. 울음 섞인 숨소리가 작게 새어 나왔고, 그 말은 내 안 어딘가를 툭 건드렸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옆에 멈춰 섰다.


그는 입을 다문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손끝은 가볍게 떨리고 있었고, 주먹은 천천히 조여드는 듯 보였다. 말없이 듣는다는 건, 얼마나 많은 말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일인지. 그의 굳은 표정이 그 무게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의 침묵은 말보다 무거웠다. 나 역시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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