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끝은 종종, 한 장의 종이처럼 아무 말 없이 버려진다. 작고 낡은 커피 쿠폰 한 장이 그렇게 나를 오래 붙잡고 있을 줄은 몰랐다. 목이 잘린 벚나무 옆,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연한 상아색 외벽의 작은 카페가 있다. 유리창을 통해 들여다본 실내는 늘 고요했고, 유리잔에 맺힌 김처럼 은근하게 따뜻했다. 우리는 그곳을 발견한 날부터 무언가를 기록하듯 도장을 찍어왔다.
말차라떼의 짙은 녹색은 봄이었다. 흑임자라떼의 회색빛은 가을 같았고, 그의 검은 코트와 잘 어울렸다. 처음엔 메뉴 이름이 어렵다며 머뭇거리던 그가, 어느 날은 내 것까지 대신 주문했다. 우리는 메뉴판을 거의 다 정복했고, 사장님은 간혹 새로운 메뉴를 서비스로 내어주곤 했다. 도장을 찍을 때마다 나는 농담처럼 말했다. “열 번째는 너랑 같이 마셔야지.”
우리는 3년 넘게 만났다. 계절이 세 번쯤 바뀌는 동안, 그의 말투는 느려졌고 내 표정도 무뎌졌다. 대화는 필요할 때만 오갔고,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같이 앉는 자리도 달라졌다. 처음엔 창가였고, 그다음은 출입문 옆, 나중엔 서로 맞은편 아닌 대각선이었다.
마지막으로 함께 카페에 왔던 날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그는 말없이 흑임자라떼를 마셨고, 나는 창밖으로 흘러가는 사람들만 바라봤다. 테이블 위엔 쿠폰이 있었지만, 우리는 아무도 꺼내지 않았다. 그날은 벚꽃잎 하나가 유리창에 달라붙던 날이었고, 우리는 그걸 닦지 않고 앉아만 있었다. 그 침묵이 답답했는지, 그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예전엔 네가 말이 많아서 피곤했는데, 요즘은 네가 조용해서 무서워.”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