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떠난 줄 알았다. 그런데 필름 속엔, 내가 오지 않은 계절만 남아 있었다.
사진관의 공기는 오래된 책갈피처럼 눅눅하고 잔잔했다. 벽에는 빛바랜 가족사진들이 박제된 계절처럼 걸려 있었고, 셔터음 대신 초침 소리만이 바닥을 긁듯 흘렀다. 현상실로 향하는 복도는 낡은 기억처럼 좁고 길었다. 그 끝, 누군가 마지막으로 두고 간 듯한 봉투 하나가 선반 위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종이 표면은 시간에 젖은 듯 부드럽게 말라 있었고, 손끝이 닿자 먼지가 눈처럼 일었다.
공기는 낡은 필름처럼 느리게 돌았다. 마치 오래된 숨결이 벽지 사이에 갇혀 있는 듯, 그 방 안엔 말 없는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필름 36컷 / 현상 요청’이라 적힌 봉투를 뒤집자, 뒷면에 작게 적힌 이니셜이 눈에 들어왔다. S.H. 입안이 바짝 말랐다. 너무 익숙하고, 너무 낯설었다. 그 사람의 이름이, 침묵 끝에 남겨진 잔향처럼 문득 피어올랐다.
조심스레 필름을 꺼냈다. 현상액 속에서 부유하던 네거티브 위로 빛의 잔상이 떠올랐다. 잉크가 번진 듯한 실루엣, 흐릿한 뒷모습, 초점 밖에서 천천히 돌아보는 표정. 긴 머리카락, 바람결에 흩날리는 회색 코트 자락, 반쯤 닫힌 입꼬리. 모니터에 비친 그 얼굴은, 마치 내게 말을 거는 사람처럼 선명했다.
갈대숲 사이를 걷던 두 사람. 하나는 뒤를 보며 웃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카메라 너머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빛이 스며든 프레임 속, 우리는 가까웠지만 결코 붙어 있지 않았다. 어깨 사이로 들어온 바람은 차갑고도 청명했다. 셔터음은 없었지만, 사진 속 공기는 이미 결말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세 장 연속, 그는 나를 보고 있었고, 나는 그를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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