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품다 #12
1월 25일 예정이었던 수술이 18일로 당겨졌다.
급작스럽게 17일 오후에 입원을 하게 되었고,
18일 오전 7시 40분에
H는 '선천성 견인척수'라는 진단하에
수술을 받게 되었다.
17일 밤 내내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첫 수술 때는 병원 산후조리원에 있느라
수술 시간에 기도만 했다.
이번은 내가 보호자로 직접 같이 병실에 있다.
새벽 네다섯 시부터 간호사들이 들락거린다.
금식을 해야 하니 아이는 힘들다.
왜 먹지 말아야 하는지,
또 얼마나 '아야'할지 알 수가 없다.
엄마가 아무리 설명해 줘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입원하고, H는 씩씩했다.
6인실 병실 안을 돌아다니며
아저씨와 할아버지들에게 인사를 했다.
신경외과 병실들은 대부분 나이 드신 분들의 차지다.
이렇게 어린 아기가 드물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어린 아기를 홀로 안고 있는 작은 엄마를 보며
사람들은 속으로 짐작만 한다.
그렇구나.... 정도.
인턴 선생님이 와서 말했다.
'H야, 잘할 수 있지? 우리 H, 멋진 형아니까 씩씩하지?'
'네! 까르르~'
H는 파워레인저 레드를 가장 좋아한다.
손에 들고 양껏 깔깔깔 웃었다.
H를 수술실 안에 남겨두고 나오면서
돌아보지 않았다.
정신이 있는지 없는지,
심장이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눈물을 꾹 참았다.
그래, 지금 울면 안 돼.
1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뒤로 하고,
11층 법당으로 올라갔다.
정신없이 108배를 하였다.
이제 눈물이 흐른다.
나는 반드시 수술이 잘될 것이라
확신하고 또 확신하였다.
병실에서 기다려야
수술이 끝난 후, 연락이 온다는 말에
또 허둥지둥 병실로 돌아왔다.
친구 K가 와서는 아침밥을 먹지 못한 나를 위해
컵라면을 끓여주었다.
아이 간호하려면 엄마가 건강해야 한다며,
엄마가 힘이 있어야 한다며 한 소리 했다.
목이 막혀서 넘어가질 않았다.
네다섯 시간 걸릴 거라던 수술이 세 시간 만에 끝났다.
회복실로 오라는 말에 급히 뛰어갔다.
수술이 빨리 끝났다는 건
좋은 뜻인가, 나쁜 뜻인가.
알 수 없었다.
아이가 마취에서 깰 때, 엄마가 있어야 해요.
안 그럼, 아이가 너무 놀라요.
그 말에 서둘러 뛰어갔는데도
너무 일찍 아이가 일어나 버렸다.
마취에서 깨어난 H는
엎드려 있어야 하는데
고통으로 울어대며
벌떡 벌떡 일어나 소리 질러 나를 찾았다.
마취과 담당선생님이
안쓰럽게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정신없이 달려가 아이를 꼭 껴안았다.
H야. 엄마가 왔어. 엄마가 왔다고.
많이 아프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하지만 지금은 참아야 돼.
더 많이 아프지 않으려면 지금은 참아야 돼....
엄마... 엄마... 아퍼. 아퍼...
아이는 신음을 내뱉었다.
제대로 누울 수도 없고,
엎드려 계속 울어대며
아이는 내 손을 꼭 붙들었다.
그 조그만 손을 잡고 나도 울었다.
그날 내내 울던 아이.
H는 아무런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몸에 칼이 닿았던 기억을
그렇게 눈물로 울음으로
토해내고 있었다.
사랑스런 나의 아이....
이 수술이 정말 너에게는 마지막 수술이기를
엄마가 기도하고 또 기도한단다.
수술을 집도하셨던 주치의 선생님이
오후 회진을 오셨다.
나는 그때 선생님의 등 뒤로
빛나는 아우라가 있다고 느꼈다.
그가 내게는 나의 아이를 살리는
유일한 구세주였다.
거듭거듭 고개를 숙이면서
사실은 엎드려 절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3일 만에 H가 걸어 다녔다.
아이는 예전과 같은 활기를 되찾았다.
'아기들은 어른과 달리 빨리 아물어요.'
의사 선생님들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병동에서 H는 인기최고의 꼬맹이였다.
신경외과 병동에는
대부분 연세가 지긋한 분들이 많다.
나이가 들면서 신경적으로
이상이 생긴 분들이 많은 까닭이다.
어린 H는 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았고,
또 재롱과 애교로
무미건조한 병실생활에 활기를 듬뿍 불어넣었다.
1월 28일 월요일 아침,
H는 노란 병아리 색의 환자복을 벗어던지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이제는 건강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다시는 수술할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면서....
H는 간호사 데스크에 들어가
'선생님. 안녕!'
맑은 목소리로 작별 인사를 하였다.
한때 신경외과 병동 최고의 인기 스타는
병실마다 돌며 즐거운 인사를 하였다.
'형아. 안녕!', '할아버지. 안녕!'
모두들 작은 아기에게 행운을 빌어주었다.
H야, 다시는 여기 오면 안 돼~
엄마랑 동생이랑 건강하게 지내~
H를 안고 돌아오는 길....
엄마는 내내 행복하였다....
2008. 2. 2.
2026. 2. 26.
이후에 가끔 H와 대화를 나누면
물어보기도 했다.
그때, 많이 아팠어?
아니, 하나도 안 아팠어.
난 형아잖아. 하나도 안 아팠지.
그러면 나는 아이를 엎어 놓고
아이의 수술 자국을 들여다보았다.
첫 수술 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흉터 작게 남으라고
성형외과 선생님께서
엄청 꼼꼼하게 잘 꿰매주셨어요.'
여린 살이라 그런지
거의 흉이 희미하게 남았었다.
그 자리를 다시 수술했다.
이제는 제법 큼직하게 남았다.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나중에 목욕탕 가면
친구들이 놀리지 않을까?
아이가 수영장도 가지 않으려 하면
어떡하지?
괜한 걱정이었다.
H에게 자기 엉덩이는 보이지도 않는다.
아무도 누군가의 엉덩이를
살펴보지 않는다.
수술 자국은 오히려 내 가슴에 남았다.
그 선명한 자국은
내 마음에 시리게 남아 있다.
아무리 지나간 과거지만
내 아이에게 남은 자국.
그건 어쩔 수 없이
부모에게는 잊히지 않는
미안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