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섭게 춥다.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강렬하다. 이런 나를 끌어내려는 지인의 전화가 끈질기게 온다.
"진짜 여기는 꼭 가야 돼. 너무 먹여주고 싶어서 그래. 정말 깜짝 놀랄걸?"
원래 맛집에 진심인 사람이긴 하지만 걱정이 많은 사람인지라 이토록 대담무쌍한 발언을 한 사람은 아닌데..... 결국 갔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너무 만족했다.
이미 내가 연재하고 있는 글들을 보자면, 해운대역에서 가까이 갈 수 있는 맛집을 먼저 소개했다. 관광객이나 멀리서 대중교통으로 가기 편한 곳을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역을 중심으로 맛집 깃발을 꽂아 설명드리고 있었는데 뜬금없는 곳으로 멀리 건너뛰어 소개한다. 그건 그만큼 군계일학이라 빨리 소개하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하겠다.
이름도 저 집 이 집도 아니고
그 집 닭갈비
옷을 두껍게 입고 길을 나서서 가게로 갔다.
역시나 그 집은 맛집이군.
식사시간이 아닌데도 웨이팅이 엄청났다.
세상 사람들은 어찌 이렇게 맛난 곳을 잘 찾아올까? 미리 테이블링을 했는데도 30분을 기다렸다. 숯불에 구워 먹는 메뉴 특성상 회전율이 빠르지 않다. 우리도 맛에 빠져서 계속 시키다가 오래 있었으니 그런 것까지 포함된 기다림 일 수도 있겠다.
우리가 아는 닭갈비는 1960년대 말 선술집 막걸리 판에서 숯불에 굽는 술안주 대용으로 개발되었는데, 3년간 군생활에서 휴가나 외출 나온 군인들이 즐겨 먹은 것이다. 흔히들 아는 춘천닭갈비다.
춘천닭갈비의 특징으로는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7∼8시간 재운 닭갈비와 양배추, 고구마, 양파, 대파, 배춧잎 등의 채소, 가래떡을 식용유를 두른 팬에 넣고 볶는 것이다.
하지만 그 집 닭갈비는 소금과 간장 베이스가 많고 숯불에 굽는 것이 시그니쳐라서 익히 먹던 닭갈비보다 고급지면서도 숯불향이 가미되어 잡내가 적고 맛도 살아있다. 그러니 평소 봐왔던 춘천닭갈비와 비주얼과 맛이 상당히 다르다.
그만큼 이 집 닭갈비는 손이 많이 가는데 생각해 보면 정성이 곧 맛인가 싶다. 편하기는 전자레인지, 가스레인지, 숯불 순인데 맛은 그 반대니 기다림과 정성이 맛을 좌우하는 것 아니겠는가.
(꼭 알고 가셔야 하는 게 가게도 준비하기 바쁜지 숯불 닭갈비는 점심이 아닌 저녁에만 하니 방문하시려면 반드시 저녁에 가시길!)
추운 날에 손을 호호 불어가며 기다리다
드디어 입장이다. 창가로 가서 적당히 옷을 벗어 자리에 앉아 주문했다.
"뭐가 맛있어요?" 내가 지인에게 묻자 지인은 답했다.
"다 나름의 맛이 있어서, 숯불은 제일 위부터 아래까지 6종 다 시켜야 해. 알겠지?"
역시나 맛집 전문가답다. 여기부터 저기까지 다 시켰다.
겉이 하얀 회색빛 숯 아래로 새빨간 불빛이 조명처럼 빛난다. 으슬으슬했던 주위 온도가 순식간에 포근 해진다. 고기가 나오기 전에 몇 가지 찬이 나왔다. 나는 잘 익은 딸기빛이 도는 동치미를 한 모금 했다.
우아. 시원하면서도 감칠맛이 뇌 속까지 자극하는 맛이다. 내 지론 중 "밑반찬이 맛있으면 메인 메뉴도 맛있다."가 있다.
이 한입에 나는 이 집을 믿을 수 있었다.
6종의 고기가 연초록의 눈이 내린 듯 가루에 덮여 나왔다. 생생한 분홍빛 닭살을 보자 입맛이 돈다.
지글지글 치르르
고기가 굽히며 우유 빛깔 육수가 아래로 떨어지며 고소한 닭냄새가 분수처럼 퍼진다.
따스한 방에서 겨울비 소리를 들으며 화로에 옹기종기 모인 것 같다.
순서대로 구워서 먹었다.
한입 한입 씹을 때마다 감탄연발이다.
어떻게 잡냄새 하나 안 날까. 앞뒤로 애기를 데리고 왔는데 다 잘 먹는 이유가 있었다. 그냥 입에 넣으면 육즙이 좍좍 흘러나오는데 부드러우면서도 깔끔하게 깊은 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