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날이나 외로운 날이면 나는 맛집을 가곤 한다. 먹다 보면 처연한 상실감은 따뜻한 음식이 가슴까지 채워 행복감으로 바뀐다.
그런데 내가 기분이 우울할 때 제일 자주 간 곳은 어딜까? 생각해 보니, 이곳이다.
꼭 마음이 공허할 때만 가는 것은 아니다.
오늘처럼 기분이 좋고 시간이 날 때도 나를 대접하듯 여기로 간다.
이곳은 이렇게 추억을 쌓고 마음을 채우고 입을 즐겁게 하는 행복이 맛있는 곳이다.
청우.
오늘 창가로 흐르는 빗소리를 들으며 회를 먹기를 원한다.
요즘엔 처음 내가 갈 때보다 많이 알려졌는지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
"혹시 저녁 자리 있을까요?"
평일이라 그런가. 다행히 자리가 있다고 한다. 아싸. 벌써부터 배는 고파지고 기분은 좋아진다.
빨리 저녁이 돼라. 맛난 저녁 한 끼로 하루를 설레게 보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은 선택이겠는가.
춥고 딱딱한 길을 걸어서 따뜻한 가게로 들어갔다. 2층에 있는 아담한 가게가 아늑하게 느껴진다. 창가에는 가게 이름답게 비가 내리는 물소리가 조용히 떨어진다.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역시나 청우 하면 코스요리지. 오마카세로 먹는 생선 코스로 6만 원으로 이만큼 풍성하며 고급진 곳은 해운대에서 다른 곳을 찾지 못했다.
청우 정식은 토마토 샐러드, 생선회(광어, 도미, 참치, 연어, 전복), 초밥 4피스, 생선구이, 튀김, 국물로 구성되어 있다.
코스는 단출해 보이지만 양들이 실해 성인 남자들도 흡족하게 먹을 수 있다. 맛있어도 양이 적어서 아쉬우면 내가 이토록 자주 찾는 맛집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음식을 주문하면 토마토 샐러드와 메추리 곤약 조림이 먼저 나온다. 난 청우의 메추리 간장조림을 좋아한다. 너무 달지도 짜지도 않다. 달짝지근한 간장에 메추리알의 고소함이 입맛을 돋우는데 제격이다. 오늘도 1 접시를 다 먹고 리필해서 또 먹었는데 역시나 맛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먹어볼까. 두툼한 생선회가 나온다. 청우의 생선회는 쫀득한 식감이 살아있다. 예쁘게 담아내는 센스는 당연하고 여러 곳에서 회를 먹지만 이렇게 입에 감아도는 생선살을 맛볼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나는 생고추냉이를 좋아해서 한 움큼 올려 코가 알싸해지게 한 입 먹었다. 맛나. 맛나. 너무 욕심을 내서 눈물 한 방울. 코가 아리다. 그래도 이 맛이지. 가끔 덮치는 묘한 아픔도 중독성 있다. 맛있게 먹기 위해 배고픈 상태로 와서 허겁지겁 먹었다. 멀리서 사장님께서 너무 빨리 사라지는 회를 본다. 음식이 순식간에 줄어드니 다음 음식을 준비하는 사장님의 속도가 빨라졌다. 사장님의 수고는 눈치챘지만 멈출 수 없다.
이건 너무 맛있게 내주는 사장님의 업이라예.
튀김이 나왔다. 뜨근한 튀김을 한입 베어 문다. 잘 구워진 노란 튀김옷들이 바사삭 거리며 고소한 소리를 냈다. 한가득 굴의 풍미가 가득 찬다. 오늘은 굴튀김이구나. 이처럼 바다가 그대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튀김이 있을까 싶다. 맛있는 건 뜨거울 때 빨리 먹어치워야지. 빠르게 사라지는 썰물처럼 접시들을 비웠다. 재료를 가지러 가시던 사장님께서 웃으며 쳐다봤다.
"다음 음식은 준비 시간이 좀 걸립니다."
나는 부끄럽지만 당당히 말했다.
"너무 맛있어서 그래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음은 초밥이다.
와. 새우초밥. 만세. 어찌 이렇게 부드럽고도 찰질 수 있을까. 다음에 초밥 새우 단품으로 시켜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야들한 새우살이 적당한 찰기를 지니고 있으니 식감과 맛이 기가 막히다. 천천히 먹어야 하는데 생각은 했지만 이번에도 실패다.
이번에는 고소한 생선구이와 시원한 국.
생선은 겉이 잘 구워져 바삭했고 안에는 육즙이 가득한 촉촉한 맛이다. 입이 좀 기름진다 싶을 때, 같이 나온 맑은 국을 마신다.
아! 영혼까지 씻겨 내려갈 것 같다. 깔끔하고 개운한 맛에 마음까지 정화된다.
이제야 알아챘다. 많이 먹었다.
배불러. 음식을 거의 다 먹고 불러오는 배를 수박 안듯이 잡고 있으니 사장님이 오셨다.
"어떻게 잘 드셨습니까? 양은 괜찮나요? 모자라시면 원하시는 메뉴 말씀해 주세요."
난 친절한 사장님의 말씀을 들으며 더 먹고 싶었지만 이미 용량초과다.
난 괜찮다며 또 오겠다고 여기 단골이라 자랑했다. 사장님은 눈을 초승달처럼 뜨시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