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행동이 말해주는 징후
2030년 4월 21일 날씨: 맑음
지나고 나면 보인다.
"아~ 내가 그래서 그랬구나."
내면이 변하면 몸과 행동이 말해준다. 나의 잠재의식이 의식에게 보내는 신호인 것이다.
나도 뒤돌아 보고 알았다.
2014년에서 2018년까지의 오랜 암흑기가 어떤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서 나에게 일어났는지, 그 시절 잠재의식이 나에게 어떤 징후를 보내주었는지 한 참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역사 속에서 거대한 제국들의 쇄락은 언제나 안에서부터 일어난다. 외세의 침략이 결정적으로 멸망을 일으키지만, 그전에 이미 내부에서 붕괴가 먼저 일어난다. 우리 몸의 면역력이 약해지고, 외부의 바이러스가 몸에 침투하는 것처럼.
나의 인생 그래프에서 가장 큰 다운 슬로프도 그렇게 진행되었다. 끊임없는 자기 비하와 자기 연민, 의존적 자세 등이 나를 안에서부터 갉아먹고 있었다. 그렇게 약해진 나의 정신적 면역체계에 외부의 사건들이 침략을 일으키며 나를 무너뜨렸다. 세부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쓰자는 의도는 아니다. 이미 내 마음속에 잘 갈무리하였으므로. 그리고 다시 상기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대한 충분한 숙고와 대응 방안 모색을 완료하였으므로.
어떤 징후를 보이는지 다시 한번 상기하고, 그 징후가 일어나면 빠르게 알아차리고 예방하려는 노력에 집중해 보고자 한다.
징후 1.
자신의 청결을 위한 시간과 노력이 줄어든다.
마음이 무너지면 씻는 것이 무척 귀찮게 느껴진다. 이는 마음속에 무기력의 씨앗이 심겼다는 신호로 인식해야 한다. (서울역 노숙자 분들이 청결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그 씨앗을 빨리 말려 죽이지 않으면 담쟁이넝쿨처럼 내 마음속 나의 멋진 건물을 통째로 뒤덮을 것이다.
씨앗을 말려 죽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씻으면 된다. 아무리 귀찮아도 무조건 씻으면 된다. 잘 안되면 아주 바보 같은 습관이라도 시작하면 된다.
나는 무기력에게 완벽히 점령당해서 면도도 하지 않고, 출근을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머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여기서 탈출하기 위해 아주 바보 같지만 간단한 습관을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 샤워실 전등 스위치를 한 번 켰다가 끄는 행위이다. '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이지?'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 행동의 원리는 간단하다. 나는 씻으려는 의지가 있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잠재의식에게 알리는 행위이다. 그리고 작은 습관이지만 점진적으로 습관을 준수하는 사람이라는 신호를 나의 몸에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스위치를 켰다 끄는 습관이 익숙해지면 간단하게 손이라도 씻고 나오는 습관으로 발전시킨다. 그렇게 아주 작게 나를 움직여 나가는 것이다.
이런 작은 행동의 분절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얘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지금 내가 멀쩡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다. 타르같이 찐득한 감옥에 감금당한 정신을 가지고 있을 때는 이 스위치를 켰다 끄는 습관을 유지하기도 또는 시작하기도 버겁다.
징후 2.
시간 약속을 자주 어긴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나를 존중하는 만큼 타인을 존중한다고 생각한다. 내면에서부터 망가져서 나에 대한 존중감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타인을 존중하는 것은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 하물며 타인의 시간을 존중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징후가 나타나면 조금 더 이상한 짓(?)을 해야 한다. 일단 나를 먼저 존중해야 한다. 내 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잘했어."라고 이야기해줘야 한다. 무슨 짓이냐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음이 나오거나, 심하면 짜증이 날 수도 있다. 그래도 작게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속삭여야 한다.
지구상에서 인간만이(혹은 일부 영장류까지)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기도,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기기도 한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아주 유치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강제로 잠재의식에 심어주어야 한다.
징후 3.
목소리가 작아지고, 발음이 일그러진다.
나를 존중하지 않으니, 자신감이라는 것이 형성될 리가 만무하다. 자신감이 없으니 나의 말에 힘을 실어 전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무작정 걷고, 뛰었다. 얼마나 뛰었는지, 얼마나 걸었는지를 따지지 않고 그냥 오늘도 걸어낸, 오늘도 뛰어낸 나를 그냥 칭찬했다. 한 발만 걸어도, 한 발만 뛰어도 나를 칭찬하는 것이다.(마음속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육성으로 소리 내어 나를 칭찬했다.)
그리고 아주 쉬운 책을 무작정 소리 내어 읽었다. 입을 최대한 크게 벌려서 발음에 신경을 쓰며 하루에 한 줄이라도 반드시 읽었다. 간절했으므로.
사실 이외에도 정말 무수히 많은 징후들이 있다. 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거나, 걸을 때 자꾸 신발이 바닥에 끌리거나(물론 원래 걸음걸이가 그런 사람은 예외다.), 험담과 불평만 이야기하는 등.
어떤 징후가 되었든 중요한 것은 딱 2가지인 것 같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내가 나를 관찰하고, 이상 징후가 보이면 비상경보를 발령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나를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세상에 유일한 존재이고, 나에게 둘도 없이 존귀한 나를 한강 다리 난간 위에 서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