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이 그리운 날이 있다

이영훈 - 일종의고백

by 김닿아


위안은 가벼운 것이다. 파도 같은 것. 그 순간을 단번에 메우고 아무일 없던 듯 사라진다. 그 잠깐으로 모든 걸 처음 마냥,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만들지만, 나는 그 안에 꿋꿋이 버티고 박혀있는 돌부리에 걸려 흘렁흘렁 움직이기만 하고 빠져나가지는 못하는 파래 한 줄기다. 순간만 책임지는 가벼운 것이라 무시하면서, 결국 그것 때문에 밀려들어와서, 그것 때문에 이도저도 못가고 매여있는 파래 한 줄기.


진동음에 핸드폰을 들여다보면 죄다 누가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알림 뿐이다. 손가락 하나에 정해지는 관심 여부. 궁금하지도 않은 몸 사진을 걸어두고, 우리는 도서관에서 만난 거예요, 같은 소개같지도 않은 글들 뿐인 곳에서 날아오는 손가락 안부는 별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공간에 남아있는 건, 외로우니까. 가볍게 결정되는 관심여부에 나 역시 그래도 된다는 건 좋은 핑계가 된다. 감정소모 없이 충족되는 것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어쩌다 조금의 말이라도 통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름 또 재미있으니까. 그러니까 동전의 양면 같은 거다. 기대 없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이 편하고 달콤하다가도, 작은 기대조차 하기 힘든 공간에서 나 지금 뭐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냥 나 좋은 대로 동전을 튕겨가며 머물렀다 한참을 방치했다를 반복하는 것이다.


어제 다녀온 친구의 결혼식은 친한 사람이 하는 첫 결혼이기도 했다. 당장 깊숙한 관계에 열망도 자신도 없으면서, 하얗게 치장하고 식장을 들어오는 얼굴을 보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결혼식 자체에 회의적이면서도 그랬다. 그 잠깐의 순간이 남은 민망한 15분 가량을 덮어주었다. 친구의 모르는 지인들 안에 섞여 사진을 찍으면서 축축해진 마스크를 볼에서 떼었다 말았다 했다.


한때 사랑했거나 사랑받고 싶었던 사람들의 얼굴을 생각한다. 매번 셔츠 소매 안으로 고무줄을 밀어넣어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집하던 것 정도, 눈을 맞출 때면 둘만 있다는 듯이 볼을 감싸던 손 정도만 떠오르고 마는 여러 투명해진 얼굴들을 본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기억 정도로 남아있을까.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그게 어떻든 이제 와 무슨 상관인가 싶다. 끝이 난 마당에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인지. 나는 왜 그렇게도 좋은 끝을 위해 마지막까지 애쓰느라 꼭 그만큼 더 너덜너덜해졌는지. 그런 생각들을 연이어 하다보면 금세 바다가 보고 싶어진다.


그냥 그런 것만 갖고 싶을 때가 있다. 바다의 어딘지 모를 끝을 가늠하거나, 파도가 부딪히고 사라지는 모습만 한참을 보다가 돌아와도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그냥 누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 지금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감각만 갖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사실과 감각을 단단하게 받쳐줄 관계는 도저히 버거우면서, 그냥 잠시 그런 척만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모레까지는 아무 일정이 없고, 그래서 술 좋아해요? 하는 물음에 답을 하려다 마음을 바꿔 제주행 티켓을 끊었다. 바다를 보고 올 것이다. 아무 문제 없어지는 곳으로.


https://youtu.be/Jjndtl6nGUY


사랑은 언제나 늘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또

마음은 말처럼 늘 쉽지 않았던 시절

나는 가끔씩 이를테면 계절같은 것에 취해

나를 속이며 순간의 진심같은 말로 사랑한다고

널 사랑한다고 음 나는 너를


또 어떤 날에는 누구라도 상관없으니

나를 좀 안아줬으면 다 사라져버릴 말이라도

사랑한다고 날 사랑한다고

서로 다른 마음은 어디로든 다시 흘러갈테니


마음은 말처럼 늘 쉽지 않았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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