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가 함께 떠난 40일간의 남미 자유여행 이야기
"일흔을 앞둔 부모님, 네 살배기 딸 꼬마쥐, 그리고 스페인어라곤 '올라'밖에 모르는 우리 부부. 과연 이 조합으로 40일간의 남미 자유여행이 가능할까?"
2018년, 우리의 무모한 도전은 갓 무릎 수술을 마친 엄마의 이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이과수 폭포를 꼭 한번 보고 싶어."
몇 해 전, 남아공에서 유학 중이던 우리 가족을(좀 더 정확히는 손녀를) 보러오셨던 부모님을 모시고 남아공 근교 여행을 했었다.
그 일환이었던 짐바브웨/잠비아의 빅토리아 폭포 앞에서 엄마는 남미의 이과수 폭포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 후로, 엄마는 종종 남미 패키지여행 링크를 보내오셨다.
화면 속 빡빡한 일정표를 볼 때마다, 나는 갓 인공관절 수술을 마친 엄마의 무릎을 떠올렸다.
젊은이들도 힘들다는 스케줄을, 과연 엄마가 그 무릎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게다가 여행상품의 가격은 왜 그렇게 비싼지, 선뜻 가시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날도 엄마가 보낸 링크를 보며 한숨을 쉬는데,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엄마, 이 패키지 갈 돈이면... 우리 다섯 식구 전부 남미 자유여행 할 수 있겠는데?
나랑 남편 꼬마쥐, 그리고 엄마, 아빠까지 다 될 것 같아."
카톡창이 잠시 멈췄다.
"정말?"
나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용감하게 외쳤다.
"그럼요!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그렇게, 스페인어라곤 '올라(Hola)'밖에 모르는 딸의 무식하고 용감한 약속 하나로, 우리는 7개월 후 남미에서 모이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남아공에서 대서양을 건너서, 부모님은 한국에서부터 지구를 반바퀴 돌아 미국을 거쳐 낯선 땅에서 조우하게 되었다.
엄마는 평생 나의 지도를 펼쳐주는 사람이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길을 잃지 않도록,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에 갇히지 않도록, 언제나 나의 세상이 더 넓어지기를 응원해주셨다.
이제는 내가 엄마의 지도가 되어드릴 차례였다.
내가 엄마의 두 발이 되어 세상 끝, 엄마가 꿈꾸던 이과수 폭포 앞에 기어이 세워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엄마에게는 평생의 꿈을 이루는 여행이었고, 손녀 바보 아빠는 이역만리 지구 반대 편에 살아 보고픈 손녀를 원없이 보며 함께 할 수 있는 여행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부모님께 얹혀 가는 것 같아 조금은 찔리지만, 효도를 빙자해 나의 모험심을 채울 절호의 기회였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꿈을 안고, 하나의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2018년 12월 15일, 우리 가족은 부모님보다 이틀 앞서 남아공을 떠나 브라질 상파울루에 도착했다.
앞으로 40일간,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휠체어와 사투를 벌이고, 해발 4,000미터의 고산병과 싸우고, 다리 없는 닭에 뒤통수를 맞으며 울고 웃게 될 것이다.
이것은 아름다운 풍경 사진 뒤에 숨겨진, 한 가족의 솔직하고 유쾌한 생존 기록이다.
3대가 함께 떠난 40일간의 남미 표류기, 함께 떠나보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