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의 역습-페루 리마 시내관광

40일 간의 남미배낭여행 Day 5-페루, 리마.

by 다락방의 미친여자

여행 닷새 째.

드디어 '관광다운 관광'을 하는 날이 밝았다.

오늘의 목표는 리마 구시가지의 성당들과 박물관.

아침 식탁에는 어제 사 온 비운의 '다리 없는 닭'이 매콤한 닭볶음탕으로 변신해 올라왔다.

닭이 크기도 하도할샤, 냄비 가득이었지만, 동시에 또 어찌나 질기던지!

온몸이 가슴살인지 뻑뻑하기 그지없는 닭을 먹으면서도 식탁에서는 농담과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엄마 덕에 낯선 남미에서 닭볶음탕과 된장국을 먹다니.

이런 게 가족 여행의 묘미다.


<계획과 어긋나기 시작하는 아침>
1.

첫 목적지는 성 프란시스코 수도원.

가이드 투어로만 입장이 가능하다길래 투어 시간에 맞춰 우버를 타고 부랴부랴 갔는데, 웬걸.

사근하고 활기찬 가이드는 온데간데 없고 학자 타입의 무뚝뚝한 가이드가 나와 우리 가족만을 위해 투어를 진행해 주었다.

그의 건조한 설명만큼이나 하이라이트인 지하 묘지도 덤덤했다.

수많은 유골로 장식까지 해놓은 공간.

난생처음 보는 해골에 신기해하던 꼬마쥐는 금세 지루해했고, 녀석의 심사가 뒤틀리기 전에 서둘러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2.

멋드러진 구시가지를 지나 대성당에 도착했다.

대성당만 보고 싶었지만, 매표소 직원은 대주교궁과 대성당을 묶은 통합권만 판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통합권을 사서 별 감흥 없는 대주교궁을 먼저 둘러보고 나왔는데, 바로 옆 대성당 입구에선 버젓이 단독 입장권을 팔고 있었다.

Aㅏ. 진짜 성당에서 이러기 있어요 없어요?

입장권 사기라니.

다리 없는 닭에 이어 연타를 맞은 기분이었다.




<난 이제 지쳤어요 땡볕땡볕>
대성당 내부는 스페인 정복자 피사로의 번쩍이는 무덤이 있다는 것 외엔 크게 특별할 게 없었다.

정복자의 무덤을 이렇게 번쩍번쩍하게 남겨둔 건 신기하다.

동양에는 원수를 갚기위해 시체를 파내서 삼백번 태형을 친 아름다운 전통도 있구마



그때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대통령궁의 근위병 교대식이었다.

때는 정오.

남반구의 한여름 땡볕이 머리 위로 작렬했다.

성당 그늘에 숨어 흘깃 보는데, 꼬마쥐는 나팔 소리에 흥분해 자꾸만 가까이 가자고 졸랐다.
평소 같으면 못 들은 척했겠지만, 요 치사빵꾸 녀석이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읍소했다.

당연히 할아버지의 "거 꼬마쥐 좀 데리고 가서 가까이서 보여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힘없는 어미는 결국 딸을 품에 안고 땡볕으로 나아가 근위병 교대식을 관람해야만 했다.

각자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나가기 싫은 나와, 더 보고 싶은 딸, 그리고 그저 흐뭇한 할아버지.



<엘리베이터가 삼켜버린 박물관>
오후엔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제 박물관으로 갈 차례.

하지만 이미 지친 부모님은 숙소에서 쉬고 싶어 하셨기에 계획을 수정했다.

숙소에 들러 부모님께 꼬마쥐를 맡기고 남편과 둘이 박물관에 다녀오기로.
그런데, 이놈의 숙소 엘리베이터가 중간에 쿵, 하고 멈춰 섰다.
다행히 현지인 여럿이 함께 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여기저기 연락하고, 밖에서 관리인이 톱질(!) 소리를 내며 씨름해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안은 점점 찜통이 되어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5인승에 8명이나 탔던 것.

아니, 정원 초과면 경고음이라도 울려야 하는 거 아니냐고!

결국 40분 만에 구출되었을 때, 시계는 오후 3시를 넘기고 있었다.

쿠스코로 떠나기 전 잉카 문명을 예습하고 싶었던 나의 박물관 계획은, 그렇게 엘리베이터에 갇혀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그날 저녁, 우리는 ‘다리 없는 닭’과 ‘입장권 사기’, 그리고 ‘엘리베이터 감금’에 대해 이야기하며 개굴개굴 웃었다.

그리고 지금 2025년, 여행이 끝나고도 6년이 지났지만 우리 가족은 아직도 "페루의 다리없는 생닭,"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갇혔던 일"을 이야기하며 즐거워 한다.

성 프란시스코 수도원보다도, 리마 대성당 보다도, 박물관보다도 우리만의 남미 무용담이야말로 정말 값진 경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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