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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Apr 21. 2024

비둘기 사체와 진 벚꽃: 비가 내려야 하는 이유

영원한 것은 없다. 비극도, 영광도

  출근길에 로드킬 당한 비둘기 사체를 봤다. 윽. 하면서도 나는 기도했다. ‘미안해. 좋은 곳으로 가렴.’ 하고 말이다. 죽어버린 것들에 대한 거만한 동정이려나 생각하다가, 그래도 죽는다는 건 어쩐지 슬프다. 여기저기 흩어져버린 생명을 보고 감히 토악질을 하는 내 맘 편하고자 미안한 것이다.


  비가 주룩주룩 왔다. 나는 비 오는 날의 추적추적하고 우중충한 분위기가 참 싫은데, 그 비둘기가 생각났다. 너와 내가 편하려면 얼른 씻겨져 사라지거라 하는 바람이었다. 비가 내려야 하는 이유였다. 끔찍하고 슬픈 것들이 씻겨나가려면 비가 내려야 했다. 운동화 앞코가 젖는 것도 꾹 참기로 하며 비둘기의 흔적이 없는 곳으로 돌아 돌아 집으로 향했다.

  


  쫄딱 젖은 운동화 속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버스에 앉았다. 길가엔 떨어져 버린 벚꽃 잎이 새하얀 눈길을 만들었다. 다음 정류장에서 타는 한 아저씨는 운동화에 붙은 벚꽃 잎이 성가신 듯 발을 탁탁 털었다. 맑은 날 흩날리던 청춘 같은 벚꽃잎들은 이제 쓸모없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런 벚꽃이 측은하다가 웃음이 났다. 아, 비가 내려야 하는 이유구나.


  피기 전, 활짝 피었을 때, 져버릴 때 모두 아름다운 벚꽃을 시기했었다. 그런데 이젠 누군가에게 귀찮아지다니. 부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아름다운 것도 비 앞에서 영영 붙잡을 수는 없는 존재라는 게 잔잔한 위안이 되었다. 나도 아름답고 찬란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지옥에 떨어뜨리길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른다.


  영원한 것은 없다. 비극도, 영광도 비가 오면 모두 조금씩 조금씩 사라진다. 그러니 이제는 비가 올 차례겠거니. 조금 잔잔한 사람이 되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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