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은 없다. 비극도, 영광도
출근길에 로드킬 당한 비둘기 사체를 봤다. 윽. 하면서도 나는 기도했다. ‘미안해. 좋은 곳으로 가렴.’ 하고 말이다. 죽어버린 것들에 대한 거만한 동정이려나 생각하다가, 그래도 죽는다는 건 어쩐지 슬프다. 여기저기 흩어져버린 생명을 보고 감히 토악질을 하는 내 맘 편하고자 미안한 것이다.
비가 주룩주룩 왔다. 나는 비 오는 날의 추적추적하고 우중충한 분위기가 참 싫은데, 그 비둘기가 생각났다. 너와 내가 편하려면 얼른 씻겨져 사라지거라 하는 바람이었다. 비가 내려야 하는 이유였다. 끔찍하고 슬픈 것들이 씻겨나가려면 비가 내려야 했다. 운동화 앞코가 젖는 것도 꾹 참기로 하며 비둘기의 흔적이 없는 곳으로 돌아 돌아 집으로 향했다.
쫄딱 젖은 운동화 속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버스에 앉았다. 길가엔 떨어져 버린 벚꽃 잎이 새하얀 눈길을 만들었다. 다음 정류장에서 타는 한 아저씨는 운동화에 붙은 벚꽃 잎이 성가신 듯 발을 탁탁 털었다. 맑은 날 흩날리던 청춘 같은 벚꽃잎들은 이제 쓸모없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런 벚꽃이 측은하다가 웃음이 났다. 아, 비가 내려야 하는 이유구나.
피기 전, 활짝 피었을 때, 져버릴 때 모두 아름다운 벚꽃을 시기했었다. 그런데 이젠 누군가에게 귀찮아지다니. 부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아름다운 것도 비 앞에서 영영 붙잡을 수는 없는 존재라는 게 잔잔한 위안이 되었다. 나도 아름답고 찬란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지옥에 떨어뜨리길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른다.
영원한 것은 없다. 비극도, 영광도 비가 오면 모두 조금씩 조금씩 사라진다. 그러니 이제는 비가 올 차례겠거니. 조금 잔잔한 사람이 되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