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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Mar 31. 2024

쇠소깍: 들뜨고 너그러운 마음

제주도민이 관광객이 싫었다가 좋아진 이유

  제주도민에게 ‘하, 허, 호‘는 기피 대상이라 단언한다. 도로 위에 자유로운 자태를 보면, 절로 얼굴이 찡그려진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제주라지만, 나는 국가 노비인 탓에 체감도 하지 못한다. 게다가 나만 알던 곳이 기념품 가게로 도배된 걸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쇠소깍이 나에겐 그런 곳이었다.


  잔잔하던 쇠소깍이 현란해진 뒤, 나는 그곳을 찾지 않았다. 가뜩이나 혼란한 내 마음이 더 어질러지는 것 같아 그랬다. 그런데 아주 오랜만에 그곳을 다시 찾았다. 선글라스를 쓴 가족들과 투명 카약을 예약하는 연인들. 혹시나가

역시나라는 마음이 들면서 내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동행한 짝꿍을 위해 관광가이드나 해주자 하며 찬찬히 걸었다.


  현란해진 주변과 달리 쇠소깍의 물빛은 여전히 참했다. 파-랗지도, 말-갛지도 않은 청록빛은 머릿속을 고요하게

만들었다. 우울할 때 찾았던 그 빛깔을 떠올렸다.


  그러고 서있는데, 한 모녀 관광객이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스팟이 좋아 보여 기다릴 참이었다. 다 찍고 물러나실 즈음 다가섰다. 그때 어머니께서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내 앞에서 열심히 카메라를 들이미셨다. 평소라면 화났을 포인트였는데 나는 빵 터지고 말았다. 그런 어머니를 말리는 따님과 꿋꿋이 사진을 찍는 어머니는 들뜬 마음을 그린 것 같았다.


  나는 순서를 양보했고, 어디서 오셨느냐, 저는 도민이니 사진 천천히 많이 찍으시라 오지랖을 부렸다. 그러면서도 계속 웃음이 났다.



  쇠소깍의 물빛은 더 이상 고요하지 않았다. 들뜨고 너그러운 마음이 쟁그랑쟁그랑 물비늘이 되어 빛나고 있었다. 이제는 많이들 오셨으면 좋겠다. 여러 곳에 들뜨고 너그러운 마음들을 심어주고 가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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