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모두 꽤 잘 살고 있어요
늘 무지개 같은 삶을 바라왔다. 다양한 색깔이 신비로이 빛나고 숨겨둔 반쪽마저 아름다운. 그렇지만 내 삶은 무지 ‘개’ 같았다. 웃자고 하는 소리 같지만 정말이다. 온갖 무지개색이 뒤죽박죽 섞여서는 탁한 검은색이 되었고, 엉망인
반쪽마저 모두에게 숨기지 못한. 나는 그렇게 흑백이 되어버렸다.
버스에서 오랜 제자를 만났다. 코흘리개였던 녀석이 교복을 입고 피곤한 표정을 지은 걸 보니, 나의 무지개들도 흑백이 되어가나 안쓰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잘 사니?”
대충 던진 나의 질문에 제자는 신중히 대답했다.
“잘 사는 것 같아요.”
“잘 사는 것 같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못 사는 건 아닌 것 같으니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머리가 띵했다. 맞는 말이다. 그럼 나는 어떤가 생각해 봤다. 못 사나? 먹고 싶은 거 먹고, 입고 싶은 거 입고, 피곤할 때 누워 잘 공간이 있다. 왜 사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죽을 이유는 없다는 말이 그제야 이해가 됐다. 나는 그냥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 내가 못하고 있는 건 없으니 말이다.
때론 이분법적으로 간단히 사고할 때가 나은 것 같다. 16가지 MBTI의 좁은 규격으로 나를 정의할 때 환호했던 것처럼, 무지개 같지 않더라도, 오랜 흑백사진 같이 나름의 분위기가 생길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