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다채 1호 17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채 Aug 31. 2021

전교에서 가장 인사를 열심히 했던 아이의 속마음

조은 님의 지갑 인터뷰 - 3

내가 이걸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심하고 행한 것에 대해서 우울감을 느껴요.



인터뷰하면서 조은 님의 독특한 점을 많이 발견했어요. 조은 님이 생각하시기에는, 남들과 다른 점이 뭐인 것 같아요?


제 인생 전반을 통틀어서 생각해보면, 제가 좀 바르게 보이고 싶어 하는 것?


어떻게 바르게 보이고 싶었어요?


저는 초등학교 때 인사를 전교에서 제일 열심히 했어요. 어른이 보이면 무조건 인사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학교에서 만나는 모든 선생님이나 청소해주시는 분들, 그런 분들한테 다 인사한 거는 물론이고, 아파트 단지에서 보이는 모든 사람마다 다 인사하고 다녔어요. 예를 들면 저는 모르는 분인데 갑자기 저한테 “어 너 많이 컸다!”라고 인사를 해주시고. 알고 보면 제가 어렸을 때 인사하고 다녔던 어른들이고….


근데 그것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한 적도 있어요. 그러니까 ‘인사를 정말 드리고 싶어서 드리는 건가? 아니면 인사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사하는가?’에 대해서 진짜 심각하게 고민을 했어요. 인사라는 게 서로 안부를 묻고 잘하기 위해서 하는 건데 내가 그런 의도로 하는 게 아니라면, 나는 뭘 하는 건가… 이런 생각도 하고.


그리고 학창 시절 같은 반에, 가끔 폭력적으로 행동하고 본인이 주목받으면 거짓말도 하는 경계선 지능을 가진 친구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 친구는 저를 유독 따랐고, 그럴 때면 저랑 원래 놀던 친구들은 노골적으로 그 친구를 싫어하는 티를 냈어요. 저도 같이 있으면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 친구를 싫어하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은 이 친구가 저한테 해를 가할 수도 있는 상황이니 조금 거리를 두라고 말씀하셨어요.


‘어떻게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친구가 오면 너무 힘든데 이 친구를 떼어 낼 수도 없었어요. 누군가를 따돌리는 건 나쁜 일인 걸 다 알잖아요. 근데 그거를 행하는 주체가 내가 되는 건 진짜 싫고. 그렇게 하는 친구들이나 선생님에 대해서도 서운함을 느끼고.


근데 그렇다고 내가 정면에 나서서 반박할 정도까지 그 친구를 깊이 생각하지는 못하는 상황에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그게 신체화되어서 나타나기도 했어요. 몸에 두드러기가 난다든지, 갑자기 코피가 난다든지. 근데 ‘만약에 그때 내가 선한 가치를 정말 내면화하고 있었으면 안 힘들지 않았을까?’라고 생각을 해요.


그렇다면 바르게 보이고 싶어 하는 게, 현재의 조은 님 자신에게 힘들게 작용했던 적이 있나요?


내가 이걸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심하고 행한 것에 대해서 우울감을 느껴요. 제가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올 때 옷을 버렸어요. 아시다시피 제가 뭘 잘 못 버리는데,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여성스러운’ 것들을 거부하자는 생각에, 가져갔었던 딱 붙고 짧은 옷을 다 버리고 왔어요. 좋아하던 딱 붙는 짧은 원피스를 버리는 것, 제가 좋아하는 덕질을 그만두는 것, 기르던 머리를 자르는 것. 모두 제가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과정인 거죠.


예를 들어 머리를 기르는 걸 생각해보면, 머리가 긴 게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적인 것에 부합하는 거잖아요. 그것에 대해 저항하고 ‘다른 여성상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머리를 자르는 건데, 이게 옳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건데, ‘내가 언제까지 이걸 이렇게 해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가끔 들어요. 저랑 같은 단계를 밟아가는 사람들이 제 주변에 많으면 전 괜찮아요. 근데 나 혼자서만 아등바등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그런 거에서 우울함을 느낄 때가 있어요.


혼자 힘으로 부족하다고 느낄 때 무력감이 오는 건가요?


그러니까 제가 긴 머리보다 짧은 머리를 백 배 더 좋아해서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 이게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심하게 되어서 하는 것들이잖아요. 근데 결심을 한다는 게 사실 저한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거죠. 그 결심이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하더라도, 동시에 피곤함도 느껴요. ‘내가 언제까지 결심을 내리면서 살아야 하나?’ 언제까지라는 그 기한이 없으니까 좀 힘든 것 같아요.


눈에 보이는 뚜렷한 결과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살아가면서 결심을 한두 번 하는 것도 힘든데, 그걸 계속해야 한다는 게 정말 피곤한 것 같아요.


해외봉사를 하러 가겠다는 결심 같은 건 딱 1년 갔다 오면 되는 거잖아요. 그거와 다르게, 만약 내가 이러이러한 이유로 머리를 자르겠다고 결심을 했는데, 어느 순간 결심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냥 기르기로 했다고 가정해봐요. 만약에 기르면, 저는 그때부터 다시 또 다른 이유로 힘들어지는 거예요. 내 가치관과 모순되게 행동하고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저항하는 것도, 아까 얘기했듯이 일종의 자기를 위한 것인데, 이 자기를 위한 것이 왜 무력감으로 돌아올까요?


음… 조금 다른 예를 들면, 철거민들이 자기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시위를 해요. 그런데 이 시위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으면 지금 시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지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시위의 결과가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 결과가 좋을지도 알 수 없고. 


그리고 항상 누군가와 대화할 때, 위협감이 든다고 해야 하나? 예를 들면 제가 여기서 페미니즘을 이렇게 얘기했을 때, 저는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는 상태로 얘기를 꺼내야 하잖아요. 그런 것들에서 오는 피로함도 있는 것 같아요. 상대방의 반응이 어떨지 신경을 계속 곤두세우고, 내가 어느 정도까지 말할 수 있을지의 수위를 생각하고.


바르게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남들과 다르다고 하셨는데, 뭔가 조은 님은 이미 바르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안에 바른 마음이 아예 없으면 저항이나 봉사를 실천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어느 정도는 바른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거로 갈등을 느끼는 상황이 생기니까 제가 완전히 바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이런 거에 대해서 내가 모순적인 것 같고, 우울함을 느끼기도 하고.


사실 완벽하게 바른 사람이 존재할까요? 제 생각엔 없을 것 같아요.


그런 거 아닐까요? “완벽하게 바른 사람이란 없어!”라고 하면서 여기서 멈춰버리면 그냥 이 상태로 끝인 거고, “완벽하게 평등한 사회란 없어!”라고 하면서 바뀌길 멈추면 지금 이 상황에서 끝이거나 후퇴하거나고. 더 나아지려면 지금이 완벽하지 않은 걸 계속 지적할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사실 세상 빻은 걸 모르면 정말 행복하잖아요. 그렇게 사느냐 아니면 계속 힘들게 뭔가를 추구하면서 사느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바로 어젯밤에 동생이랑 배고픈 소크라테스랑 배부른 돼지 얘기를 했거든요? 저랑 동생이랑 같이, “아니 누가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선택해, 누가 봐도 배부른 돼지가 나은 거 아니야? 소크라테스 약간 바보 같아!” 이러고서 바로 몇 시간 전에 잠들었는데 제가 여기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을 줄 몰랐어요.


지금 완벽하게 배고픈 소크라테스이신데요? (웃음) 바보 같은 선택을 하셨네요.


(폭소) 그러니까 또 지금 내가 바른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이런 데서 입을 놀렸구나, 집에 가서 생각하는 거죠.


절대 그렇게 생각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웃음) 그러면 마지막 질문인데요, 전 인터뷰이님이 조은 님을 위해서 질문을 남겨 주셨어요. 조은 님은 본인을 색깔로 표현하면 무슨 색이에요?


요즘에는 좀 그런 생각을 해요. 이거에 대한 답은 아니지만, 정말로 색깔이 뭔가를 표상하나? 그런 생각을 하니까 나를 상징하는 색깔이 뭘까에 대해서도 말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그냥 제가 좀 오랫동안 좋아한 색깔은 빨간색이었던 거 같아요. 왜냐면 빨간색이 활기 있어 보이는 색깔이기도 하고, 음… 열정 있어 보이기도 하고.


하지만 빨간색이 조은 님을 나타내는 색인지는 잘 모르겠다?


네. 요즘에 진짜 많이 하는 생각이 ‘내가 이렇게 하이 텐션일 때의 내가 나일까, 아니면 우울할 때의 내가 나일까?’ 이런 생각이에요. 요즘 좀 우울하니까 그런 걸 많이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어느 때 내 모습이 나일지가 가늠이 안 되는 상황이라서 어느 때 나를 표상하는 색깔이 정말 나를 표상하는 색깔일까에 대해서도 말을 잘 못 하겠어요. 만약에 요즘 제가 계속 하이 텐션이었으면 “(신나게) 아 저 빨간색이죠!” 이렇게 했을 텐데. (웃음)


그러면 요즘 조은 님은 어떤 색깔인 것 같아요?


어… 요즘은 뿌연 색깔? 계속 고민하고 답을 못 찾겠는 그런 시기라서요. 바다에 낮에 안개가 끼면은 그게 진짜 위험한 상황이래요. 오히려 밤이면 불을 켜면은 되잖아요. 그런데 낮에 안개가 끼면 이미 환한데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황이니까 오히려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다고 해요. 그 말이 되게 인상 깊었는데 요즘이 그런 시기가 아닌가 싶어요. 어두우면 불을 켜면 되는데, 그것보다 조금 더 막막한 상황?


마지막으로, 인터뷰 소감 들어보고 싶어요.


어… 제가 이제까지 겪은 일이나 제가 살아온 거에 대해서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혼자 하면 자꾸 부정적인 방향으로 빠지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좋은 에너지를 받으면서, 긍정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좋았어요.


조은 님이 마지막 인터뷰이신데, 저희도 1호 인터뷰를 잘 마무리한 것 같아요.

다음 인터뷰이가 언제 답해주실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질문을 남기고 싶으세요?


불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어요.


왜요?


어… 옛날에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변화는 불안을 초래할 수밖에 없고, 그 불안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만이 변화할 수 있다고. 그래서 스스로한테 지금 이 불안을 회피하지 않고 이겨내야 내가 변화할 수 있다고 계속 말해요. 성장도 곧 변화잖아요. 그런 것들을 계속 되뇌고 있는 시기여서, 불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다채 1호는 인터뷰이의 지갑을 통해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각자의 크고 작은 다름이 어우러지는 다채로운 사회를 꿈꿉니다. Instagram
이전 16화 알게 된 이상 멈출 수 없었던 저항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