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Compliance 사회적 규제 — 국제적 관점
옥스팜 Oxfam 이란?
옥스팜(Oxfam)은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리스의 기근을 돕기 위해 결성된 옥스퍼드 기근구호위원회(Oxford Committee for Famine Relief)에서 시작된 국제 NGO다. ‘가난이 없는 공정한 세상(A just world without poverty)’을 비전으로, 현재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인도적 긴급구호, 국제개발, 캠페인 활동을 통해 빈곤의 결과가 아닌 원인에 개입해 왔다. 1948년 영국 옥스퍼드에 문을 연 세계 최초의 옥스팜 채리티숍은 오늘날 한국의 ‘아름다운 가게’ 모델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1953년 한국전쟁 당시, 옥스팜은 고아·장애인·노인을 위한 구호 활동에 약 6만 파운드를 지원하며 한국 정부기관 및 국제기구와 협력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평화와 복지의 일부는, 그 시절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에 손을 내밀었던 국제적 연대의 결과이기도 하다. 1990년대 이후 옥스팜은 개도국 농민과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공정무역재단(Fairtrade Foundation, 1992)을 공동 설립했고, 2000년대에는 기후위기, 조세정의, 채무 탕감, 무기거래 규제 등 불평등의 구조 자체를 겨냥한 캠페인으로 활동 범위를 확장했다.
그 연장선에서 패션 산업은 옥스팜에게 결코 주변적인 의제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2,760만 명이 강제노동 상태에 놓여 있고, 1억 3,800만 명의 아동이 노동에 노출돼 있으며, 이는 전체 아동의 약 8%에 해당한다. 옥스팜은 이러한 수치가 특정 산업의 일탈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뿌리내린 구조적 문제의 일부라고 지적한다. 특히 패션 산업은 낮은 임금, 과도한 초과근무, 결사의 자유 제한, 여성 노동자의 권리 침해가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산업 중 하나다.
우리가 입는 옷은 농민이 재배한 원료와 노동자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패션의 지속가능성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과 인권, 그리고 정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옥스팜이 패션에 관여하는 이유는 단순히 ‘윤리적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평등이 가장 응축된 현장 중 하나에서 그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다.
그래서 2025년 9월 26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열린 〈2025 옥스팜 ESG 컨퍼런스: 지속가능한 패션〉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이 자리는 ‘규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넘어, “패션 산업의 책임을 누구와, 어떤 관계로 나눌 것인가”를 묻는 자리였다.
제품이 다시 사랑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리사이클이 아니라 회복(recovery)입니다.
-Thrusie Maurseth-Cahill(Oxfam UK)-
첫 발표자로 나선 Thrusie Maurseth-Cahill(Oxfam UK)은 방글라데시와 캄보디아 의류 생산 현장에서 8년간 활동해 온 실무자다. 그녀는 수백 벌의 옷을 만드는 노동자가
정작 한 벌의 옷조차 살 수 없는 패션 산업의 구조적 모순을 짚었다.
옥스팜은 이 문제에 접근할 때 자선적 구호자도, 기업의 홍보 파트너도 아닌 ‘비판적 동반자(critical friend)’의 위치를 선택해 왔다. 브랜드와 협력하되, 그 관계 안에서 불편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 방식이다.
대표적 사례가 M&S × Oxfam ‘Another Life’ 프로젝트다. 소비자가 헌 옷을 매장에 기부하면, 그 옷은 재판매·재사용 과정을 거쳐 3,600만 벌의 순환과 2,300만 파운드의 기부금으로 이어졌다. 또 다른 사례인 Barbour ‘RE-LOVED’ 프로젝트에서도 기부받은 재킷은 리워크·업사이클을 거쳐 다시 판매된다.
다만 이 기부금은 특정 국가의 패션 노동자에게 현금으로 직접 지급되는 구조가 아닌 옥스팜의 빈곤 완화, 노동권 옹호, 정책 캠페인, 현지 파트너 단체 지원 등 구조적 변화를 위한 활동 전반에 사용되었다. 즉,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기부를 통한 즉각적 구제’라기보다, 패션 산업을 가능하게 해 온 관계 자체를 다시 설계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생존이 아닌 삶을 위한 임금”
Living wage is not about surviving, it’s about living.
-Nina Crawley(Oxfam Australia)-
두 번째 발표자인 Nina Crawley(Oxfam Australia)는 패션 산업의 임금·고충·구제 중심의 실무 프레임을 소개했다. 그녀는 먼저 임금이 부족할 때 노동자의 삶이 어떻게 붕괴되는지를 구체적인 데이터로 보여주었다.
방글라데시의 경우, 의류 노동자의 91%가 자신과 가족을 위한 충분한 식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으며, 베트남에서도 20%의 노동자가 기본적인 식비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임금 부족은 곧 과로로 이어진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의류 노동자의 99%가 상시 초과근무를 하고, 그중 84%는 초과근무를 거절할 수 없다고 답했다. 베트남 역시 65%가 정기적으로 초과근무를 하고 있으며, 절반 이상이 초과근무 시간과 수당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건강은 더욱 직접적인 지표다. 방글라데시 노동자의 72%, 베트남 노동자의 53%는 아플 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경제적 여유가 없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병가를 쓰지 못하거나, 임금 삭감을 감수하며 일터에 나온다.
Nina는 이 수치들이 ‘개인의 선택’이나 ‘개발 단계의 문제’가 아니라, 가격 결정 구조와 임금 설계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이에 옥스팜 호주는 Lorna Jane 등 브랜드와 협력해
공급망 내 임금 구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Living Wage Supplement’ 제도를 도입했다. 그 결과, 생산공장의 전 노동자가 생계임금(living wage)을 보장받게 되었다.
그녀는 OECD 실사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노동 중심 ESG 전환을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1. 임금 데이터의 투명화
2. 가격 협상 구조 내 Wage Ring-Fence
3. 공급망 내 임금 격차의 단계적 공개
이를 통해 임금은 삶을 가능하게 하는 최소 조건으로 ESG는 그 조건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약속의 문제로 확장시키는 제안이다.
함께 설계하는 ESG
휴식 시간, 나는 Thrusie와 Nina에게 다가가 명함을 건넸다. 내가 런던에서 살던 시절, 주말마다 찾던 옥스팜 체리티숍(Oxfam Charity Shop)이 내 일상이 ‘순환’을 실천하는 공간 중 하나였다고 이야기하자, Thrusie는 자기도 이스트런던에 산다며 반가워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ESPR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요즘 가장 고민하고 있는 질문을 꺼냈다. “대부분의 의류는 아시아에서 만들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지속가능한 패션의 기준은 늘 서구의 언어로만 정의될까요?
그녀는 잠시 생각한 뒤 이렇게 답했다.
“That’s why we need to co-design —together with the regions where fashion is made.”
“그래서 우리는 공동 설계(co-design)가 필요합니다. 패션이 실제로 만들어지는 지역과 함께요.”
서울 한복판에서 런던과 시드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속가능한 패션을 둘러싼 책임과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ESG의 미래는 규제를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이 이루어지는 지역과 함께 기준을 공동 설계하는 데 있다는 점을 이 대화는 분명히 보여주었다.
다음 편에서는, 이 국제적 논의가 한국의 법과 산업 현장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지를 살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