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책표지의 속사정'이라는 시리즈 글을 쓴 적 있다. 한눈에 봐도 내용이 연상되는 책 표지가 있는가 하면, 유추하기 어렵거나 뭔가 더 궁금해지는 책 표지가 있었다. 그런 경우엔 편집자에게 직접 연락을 취해 묻곤 했다. 그때마다 묻지 않았으면 서운할 법한 이야기가 많았다.
시인 박준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 그랬다. 출판사 난다 김민정 편집자에게 전화를 걸어 묻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박준 시인이 산문 초고를 보내와 읽었을 때 제목이 바로 나왔고, 이 그림이 바로 떠올랐다'는 것, '그림 사용료를 받지 않는 대신 박준 시인의 시집과 제 시집을 세 권 보내달라고 해서, 보답의 마음으로 그의 그림을 구입해 (편집자가) 소장하고 있다는 것', '눈코입이 없는 게 아니라 눈물로 지워져 가려졌을 만큼 삶이란 건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등등.
책 표지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독후감'
그런데 최근 궁금한 책 표지가 또 생겼다. <공정감각>이란 책이다. 이 책은 내용 설명이 좀 필요한데 출간 배경은 이렇다.
2022년 5월 연세대 한 재학생이 청소노동자들의 집회 소음이 수업권을 침해한다며 청소 노동자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일이 알려졌다. 6월에도 이 학교 학생이 청소노동자들에게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같은 대학 나임윤경 교수의 '사회문제와 공정' 강의계획서가 알려진 것은 그즈음. 당시 그는 인터뷰에서 "일부 학생들의 공정 감각이 유독 사회나 정부 등 기득권이 아닌 불공정을 감내해 온 약자를 향하고 있다"고 일갈했다(관련기사 : "학생들 청소노동자 고발, 부끄럽다"...수업계획서로 일침 놓은 연대 교수). <공정감각>은 이 나임윤경 교수와 그의 수업 '사회문제와 공정'을 들은 수강생 13인의 글을 엮어 나온 책이다.
다시 표지를 보자. '사회문제와 공정'이란 수업 분위기와 이 말랑말랑한 느낌의 표지가 어울리나? 나는 모르겠다. 봐도 봐도 의아하다. 비슷한 인문학책의 분위기랑은 달라도 많이 다르다. 가까이서 자세히 봐도 그렇다. 이 책의 편집자인 이효미씨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한 겁니까.
"제가 듣기로 디자이너의 의도는, 막혀 있다가 터져 나오는 (필자들의) 말들을 연상했다고 해요. 편집자인 제가 생각할 때는 '공정'이나 '잣대' 하면 왠지 딱딱하고 잘 재단된 반듯한 심상이 떠오르기 마련인데 이 책은 새로운 공정 '감각'을 제안한다는 면에서 부드럽고 폭신폭신한 표지 이미지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아, 그제야 의도가 이해가 간다. 이 편집자는 저자들에게도 표지를 설명하면서 "책 표지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독후감'이라는 말이 있대요, 그 결과가 이 표지고요"라고 말해줬다고. 젊은 감각의 저자들이어서 그런지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독후감인데, 매우 좋은 의미에서 새롭고 독특한 시도'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책 표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려고 했는데 '책 표지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독후감'이란 말에 그만 꽂혀버렸다. 제목을 뽑는 나의 일에도 이입되었다. 책 표지 디자인이 '디자이너의 독후감'이라면, 제목은 편집기자의 독후감이 아니겠나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