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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경 Sep 05. 2024

동네서점에 갔다가 영업을 했다

오후 8시 반. 발가락 하나에 물집이 잡혔다. 오늘치 운동 더 해야 하는데... 걸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루틴의 여왕 금이에게 오운완 보고 해야 하기에 집을 나섰다. 동네서점에 가서 둘째 문제집 한 권을 사고 동네 한 바퀴만 더 돌고 와야지 했다.


육교를 건너면서 생각했다.


'이번에는 말해야지.'


'너 좋아한다'라고 고백하러 가는 길도 아닌데, 눈앞에 그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이런 내 마음을 전혀 알 리 없는 동네서점 고양이가 문 앞에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다. 지난번에 무심코 문 열었다가 밖으로 나가버린 고양이가 생각나서 문 열기가 주저되었다.


"나 들어가야 하는데... 저리 좀 비켜줄래?"


비킬 생각이 전혀 없는 고양이. 잠시 신경전을 벌이다 고양이가 후퇴한다.


"고마워. 너 나가면 사장님 걱정하실까 봐 그래."


책방은 지하. 나는 이 책방에 갈 때는 군산에 있는 한길문고가 생각난다. 한길문고도 처음엔 지하에 있었다고 했다. 어느 날 비가 무척이나 많이 왔고 책방이 물에 잠겼다. 주민들이 나서 수해복구를 도와 지금의 한길문고가 있게 거라고. 그때의 일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한길문고 일을 자신의 일처럼 돌본다고 배지영 작가가 글로도 쓰고 이야기도 들려줬다.

갈 때까지 다정한(맞지?) 눈으로 나를 바라봐준 고양이.

   

https://omn.kr/1bkbn


지하로 가는 계단을 걸을 때마다 군산의 한길문고와 같은 책방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아래 글에서 이 책방에 대해 살짝 언급한 적 있다.



서점의 절반 이상은 초중고등학생 학습지다. 한 3분의 1 이상이 일반 서적 되려나. 고양이들 두어 마리와 주인아저씨가 함께 나이 들어가는 곳이 이 서점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이곳을 '고양이 서점'이라고 부른다.


https://brunch.co.kr/@dadane/533


어? 그런데 사장님이 안 계신다. 대신 사모님이 계신다. 얼마 전부터 사모님이 함께 일을 보시는 것 같았다. 아저씨 혼자 이제는 힘에 부치셨던 걸까. 아, 오늘도 고백 실패인가.


아이 문제집을 골라 카운터로 가는데 뭐지? 이 달라진 분위기는? 내가 사려던 두 권의 책이 매대에 예쁘게 누워 있었다.


집으로 데려온 아이들


박연준 에세이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표지 작업을 정인하 작가가 했다. 내가 아는 동네 작가. 첫 그림책 <밥, 춤> 나왔을 때 인터뷰 했다. 내년쯤 단행본이 나올 거라고. 얼마전에 만나 커피를 마셨지롱), 난다 시의적절 시리즈 한정원 <내가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냉큼 집어 들고 사모님을 쳐다보면서 내가 외.쳤.다.


"사모님, 저도 책 나왔어요."

"네?"


"저 이번에 네 번째 책이 나왔어요. 제 책도 여기 동네서점에서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말씀 드려요."

"어? 그래요? 네 번째 책이라고요? 제목이 뭐예요? 좀 보여줘요."


"음... 안 가져왔는데... 제가 알라딘에서 찾아서 보여드릴게요."

"아니 네 번째 책이라면서, 왜 이야기를 한 번도 안 했어요?"


"음... 부끄러워서요."


사장님과는 늘 간단한 대화 정도만 나눴을 뿐 사모님과는 처음 튼 대화다. 그 시작이 내 책 좀 입고해 달라는 이야기라니. 나 좀 용기 있다. 이게 다 편집자님 때문이다. 오늘 오후에 "서평도 나가고, 블로그 리뷰들도 늘면서 책 판매가 좀 잘 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들은 것. 이대로라면 나도 최굴굴 작가님처럼 1쇄를 팔아치울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감사합니다, 전국에 계시는 독자님.  


https://brunch.co.kr/@choigulgul/319


아직 내 몸으로는(아직 그래요. 흑흑 이번에는 등) 최굴굴 작가님처럼 필사적으로 뛰어들 수는 없겠지만 동네책방 정도는 커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별렀던 거다. 이번에는 말해야지. 책이 나올 때마다 늘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그 말. "사장님, 저 책 나왔어요." 그 말을 사장님이 아니라 사모님에게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달라진 책방 분위기. 추석 이후엔 더 달라질 거란다.

"아이고, 잘 이야기했어요. 내가 요즘 여길 싹 정리하고 있거든. 아저씨는 참고서에만 관심 있지 단행본에는 관심이 없어요. 사실 송인서적 부도났을 때 우리도 좀 많이 피해봤거든. 그 이후로 아저씨가 단행본을 잘 안 들이셨어. 근데 동네서점이 서점다워야지 문제집만 있는 것도 좀 그렇잖아요. 요즘 잘 보내는 단행본이나 시집도 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래서 싹 정리했어요. 아직도 정리할 게 많지만 일단 매대부터 했어요. 신간 중심으로 많이 주문해 놓고. 손님들 와서 잠시라도 책을 볼 의자도 필요한 것 같아서 그것도 좀 들여놓고. 추석 때 더 정리할 거야. 아니 우리 동네에 글 쓰는 작가님이 있는 줄 몰랐네. 네 번째 책이라고? 책은 많이 나갔어요?"


아, 나는 왜 책 판매 부수 앞에서는 늘 작아지는가.


"세 번째까지는 그냥 보통이었는데, 이번 책은 반응이 좋은 것 같아요. 광화문 교보문고에서도 한 달 정도 매대에 있대요."

"나는 덜 알려진 좋은 책들도 찾아보려고 하고 있어요. 온라인 서점 4군데를 띄워놓고 얼마나 들여다보나 몰라."


자식 자랑은 돈 내고 하라고 하던데 자식 자랑 아니고 내 책 자랑이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없는 이야기 지어낸 건 아니니까. 애써 부끄러운 마음을 곱게곱게 펴본다.  


"잘 되었네. 일단 우리 온라인 판매도 시작한 거 알죠?(이것도 사모님이 시작한 것 같다) 네이버에 열린책방 치면 스마트스토어 나와요(네 알아요. 저도 관심 등록해 뒀어요). 내가 거기에도 올려둘게요. 책 계속 쓸 거잖아요."

"아... 네... 계속 써야죠. 그렇게 해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말씀드리길 너무 잘했네요. 아저씨 안 계셔서 그냥 가려고 했는데..."


"아저씨는 관심 없어요. 호호. 책방에서 하고 싶은 일들이 좀 있는데 종종 이야기해요."

"그럼 좋죠. 그런데 지금까지 뭐 하셨어요? 이렇게 열심히 하시는데..."

"나요? 놀았어요. 농사짓고. 하하하."


사모님이 일으킨 변화를 사진으로 몇 장 찍고 싶다고 하니, 지금 찍지 말라 신다.


"추석 때 더 정리하면 그때 찍어요. 지금은 아냐."

"왜요... 지금도 충분히 좋아요. 훨씬 나아졌어요."

"아저씨도 이렇게 하는 거 반대하더니... 이렇게 해놓고 단행본 매출이 늘어서 좋아해요."


애정하던 동네서점의 변화가 반갑다. 이곳에서 곧 내 책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뿌듯하다. 책방 앞은 내 초등학교 모교가 있는 곳.


<빨강머리 앤>이 곧 나라며 공상하길 좋아하던 열세 살 아이가 30년도 더 지나 학교 앞 책방에 자신의 책을 서가에 꽂게 될 날이 오리라는 걸 알았을까. 감격스럽다. 그때 학교 앞에는 어떤 서점도 도서관도 없었는데...


서점을 나와 초등학교 앞을 걸으며 생각했다(내 모교는 개교 100주년을 넘은 역사가 깊은 초등학교다). 고양이 서점의 변화가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도 꿈을 심어줬으면 좋겠다라고.


행동파 사모님은 내 전화번호를 물으시더니 금세 문자를 남겨두셨다.


"열린책방에, 책 올렸습니다. 맘에 드실지 모르겠어요."

우리 가족이 '고양이 책방'이라고 부르는 곳을, 열린문고(책방)책방의 부캐 이름으로 쓰고 있는 것을 보며 소름이 돋았다. <이런 제목 어때요?>도, 고양이 책방도 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어쩐지 그럴 같다. ㅎㅎㅎ 느낌이 좋아. 


오늘 아침에 페북이 알려줬다. 너 이런 문구가 적힌 책을 읽었다고. 생각해보니 오늘의 문장이었어. 또 소름 돋네. 모든 책방 사장님들, 감사합니다.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에 존재해 주셔서요.



글은 쓴다,

제목은 어렵다면


https://omn.kr/29xyh


https://naver.me/5T44Wk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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