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의 무게와 엄마의 책임감

by 대치동 비둘기

육아에 국민 아이템이 있듯이

교육에도

'누구나 따라가면'

상위권에 안착하고,

아이가 좋은 대학에 입학한다는

A코스가 있다.



A코스에 진입했다는 것은

뒤쳐지지 않고 있다는 안정감

아이가 열심히 잘 하고 있다는 자부심

그리고 그 코스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게 된다.





누군가는 사교육비 때문에 포기하고

누군가는 입학시험 때문에 포기하고

누군가는 교육관 때문에 포기한다지만,

아이가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없듯

마음 한구석에는

A코스를 따라 달려가주지 못하는

미안함이 슬그머니 자리잡아

자꾸만 서글퍼지고

불안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불현듯

혹시 나의 아이가

A 코스를 따라갈 수 있는 재능과

소질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모르고 못해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날이면

성당의 고해성사 기간도 아닌데

자꾸만

모든게 엄마인 나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만 같아

'내 탓이다'라고 생각드는 초조함이 밀려온다.






'케바케(Case by case)'라는 말에서 파생된

'애바애(아이 by 아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이 같을 수 없고,

비록 같은 조건을 주더라도

아이에 따라 다른 결과값이 나온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A 코스도 아닌데,

내 아이에게 잘 맞을 것 같아 찾아간 학원에서

아이의 레벨테스트 결과지를 눈 앞에 두고

학원 선생님과 대면 상담하며

'어머님은 도대체 무엇을 해줬냐'는 질문과 함께

아이의 중요한 시기에 아무 것도 안해준

부족한 엄마임을 지적받으며

따까운 눈초리를

받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나는 누구, 여긴 어디인가'하는

해탈의 경지를 경험하게 된다.





모든 일은 당사자가 되어 보지 않는 이상,
그 마음을 전부 이해할 수 없다.



나 역시 아이의 모든 것이

엄마의 탓인 것처럼

미안해하거나 반성하는 학부모를 보며

그럴 필요는 없지 않나 하고

반문해왔다.



하지만 막상

내 아이가 커가면서

엄마로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과 미안함은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무언가 때문이고,

불현듯 불안하고 불편한 감정의 파도는

이성으로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중이다.






엄마의 책임감은

거기에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데,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줘야 할 의무감이 있기에

'엄마표'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갈아넣어

육각형 인재를 빚어내는 데

노력하게 만든다.



A코스, B학원, C기관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손 놓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을 한 엄마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아

아이에게 무엇이든 가르쳐야만 한다.



그 선택의 책임은 바로 엄마니까






요즘 엄마들은 정말 피곤한 인생을 살아간다.

가장이 아빠에게 가장의 무게가 있다면,

엄마에겐 그 무게의 두 세배는 더 무거운 책임이 있다.



아이는 알아서 잘 크는 것도 알고,

모든 것을 엄마가 책임져 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엄마인 나의 선택으로 달라져버릴 것이 없나

전전긍긍하고 불안해하며

철저한 자기반성과 복귀를 통해

아이와 나를 성장시켜야만 하는

발전적 삶을 살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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