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하고 있는지 확인받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엄마
우리나라 대부분의 학부모들에게 아이를 학원에 왜 보내냐고 질문하면 열이면 아홉 돌아오는 대답이 있다.
남들이 다 시키니까
그 대답을 들으며 학부모가 아닌 입장에서는 도대체 남들이 다 시키면 해야하는가 하는 의문을 안겠지만, 막상 학부모가 되어보면 전세가 역전된다. 아이가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되는 나이일 때는 '애들이 다 알아서 할텐데, 학교에서 다 배울텐데'라며 마음 편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학부모가 되기 1년 전부터 가치관과 생각에 혼동이 오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모두 알고 있는 교사의 입장에서 볼 때, 학교 수업 시간에 다루는 과정만 '충실히' 하더라도 별 문제가 없으며 특별히 지필 평가를 봐서 아이들을 줄세우지 않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 정도만 채워도 된다. 하지만 막상 초등 학부모의 자리에 가게 되니 '충실히'라는 두리뭉실함과 '혹시나'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가 부족한 점이 있을까봐 걱정과 우려가 덜컥 밀려온다.
학원에서는 정확한 진단과 시험을 통한 석차가 나온다
전국구에 프랜차이즈를 둔 학원의 경우에는 분기 또는 월별로 해당 학원에서의 석차, 전국 학원에서의 석차가 나온다. 게다가 어떤 부분을 못하고 보충이 필요한지 시각적으로 표기되어 있는 성적표를 배부받고 클리닉이라고 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채워주는 수업도 함께 해준다.
마치 학교에 보내면 아이가 잘 하고 있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지만, 학원에 보내면 아이가 잘 하고 있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다.
물론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지금 잘하는 것을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잘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만약 그렇다면 세상 모든 아이들이 수능 만점을 받게 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여나 가장 중요한 시기에 필요한 교육을 하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것은 사교육 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복합적인 상황이 혼재되어 만들어낸 기이한 현상이다.
다른 아이는 다 OO, DD를 다니는데 우리 아이만 안 다녀도 괜찮을까?
7세 고시를 통해 남들이 다 보낸다는 영어 TOP3 학원,
2학년 때 입학시험을 보고 남들이 다 보낸다는 수학 학원,
6학년에 미리 들어가둬야한다는 중고등 내신 학원,
인생의 이정표처럼 대치동과 학군지에는 시기마다 남들이 다 보낸다는 학원들이 있다. 물론 '남들이 다 보낸다'는 말에서 '남'의 의미는 선행을 잘 다져와서 입학 테스트를 통과해 학원에 적응을 잘 하는 아이들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나의 아이가 '못한다'라고 생각하는 부모는 세상에 잘 없다. 교육적 소신이 있거나, 다른 학원이 좋아서 보내지 않더라도 우리 아이만 '그곳'을 안간 것이 부모 탓이 될까봐 밀려오는 초조함과 불안감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작스레 밀려온다.
학원 vs 엄마표
아마 지난달부터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영어유치원과 일반유치원의 논쟁이 활발해질 시기이다. 보통 '엄마표'라고 하면 학원을 다니지 않고 엄마가 전적으로 아이의 학습이나 공부를 도와주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과거에 수학 정도를 이야기했다면 요즘은 영어까지도 포함되어 지칭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엄마표로도 충분히 가능했던 학습 수준이 훌쩍 학년과 나이를 뛰어 넘어서고 있다. 예를 들면, 실제로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배우는 수학 수준은 충분히 엄마표로도 가능하고 아이도 스스로 혼자서 할 수 있는 수준이지다. 하지만 엄마표로 함께 봐줘야할 수준이 '다른 아이들'이 대부분 배우고 있는 선행 단계를 따라가줘야하는 수준으로 올라온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 빼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선행 수준으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결국 엄마표라는 무게감은 단지 현재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잘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준에서 나아가 대부분의 아이들이 배우는 '선행' 학습 범위까지도 따라가주는 것이 되어버렸다.
영어 유치원 논쟁에서도 점차 '엄마표 영어'로는 '영어 유치원'의 양과 질을 따라잡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에 '여건이 되면 당연히 보내세요'라는 조언이 나오게 되었다. '일반 유치원'을 보낸다 하더라도 '영어 유치원'에서 다른 아이들이 배우는 정도의 반 이상은 따라잡아 두어야 갈 수 있는 '영어 학원'이 생기기 때문에, 결국에 돌고돌아 그 책임과 부담이 부모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것이다.
학원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국어, 수학, 영어
이제 더이상 우리나라에서 이 세 영역의 학원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문해력을 키우기 위해 논술 학원(국어 학원)을 보내고, 교과 학습(교육과정 범위)과 사고력 향상을 위해 수학 학원을 보낸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나오지만 이미 3세 이후부터 영어 학원도 보낸다.
남들이 다 그정도 나이에 보내고, 그정도로 다니기 때문에 소신있게 우리 아이만 안 보낼 용기 있는 학부모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그 용기있게 엄마표를 외치던 학부모에게 화살이 돌고 돌아, 아이의 중요한 시기에 무엇을 했냐는 질책과 책임이 돌아오는 순간 '그냥 남들처럼 학원 보낼 걸'이라는 후회가 밀려오는 세상이 되었다.
'도대체 다 왜 그러는거지'라는 비판적 사고는 필요하지 않다.
무서운 속도와 높이의 파도에 때로는 휩쓸리더라도 남들과 함께 올라타게 되면 그나마 우리 아이는 남들만큼은 하고 있다는 평안함과 안도감을 맛볼 수 있다. 굳이 그 파도를 '지금'부터 타야하는지 의문스럽겠지만 남들이 다 하고 있으니 분명 실패는 하지 않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