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달님과 누렁이

by 겨울나무

"개굴, 개굴…….”


멀리 들판에서는 개구리들의 요란스런 합창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누렁이는 너무 피곤해서 일찌감치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잠이 오지 않습니다. 오늘따라 왠지 은근히 화도 나고 속이 상했기 때문입니다.


누렁이는 온몸이 너무나 뻐근하고 아팠습니다. 안 아픈 곳이 없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요즈음 한창 바쁜 농사일 때문에 벌써 열흘째 하루도 쉬지 못하고 뼈가 빠질 정도로 논갈이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렁이는 자리에 누운 채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연신 새김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겪어야 할 고생할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아아- 나는 왜 다른 짐승들처럼 귀여움도 받지 못하면서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고생을 견디며 살아야 한담!‘


마치 메기의 입처럼 생긴 누렁이의 커다란 입에서는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습니다.

남의 사정은 눈꼽만큼도 이해해 주지 않고 하고한 날 죽도록 일만 부려먹는 주인아저씨가 새삼 원망스러웠습니다.


오늘따라 누렁이가 이렇게 못마땅해 하는 것은 매일 고된 일로 시달리고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일이 너무 힘에 부쳐서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바로 조금 전 저녁때의 일입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누렁이는 종일 뼈가 빠질 정도로 힘겨운 일에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해가 지자 천근이나 되는 지친 몸을 이끌고 막 대문간을 들어섰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 어딜 갔다가 왔는지 바둑이도 갑자기 뛰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아이구, 우리 바둑이 왔구나. 그렇게도 널 보고 싶었는데 어딜 갔다가 이제야 오는 거니?“


그때 마침 마루에서 책을 읽고 있던 지윤이가 바둑이를 발견하자 반색을 하며 뛰어나왔습니다. 그러자 바둑이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서 지윤이한테 기어오르고 매달립니다.


외양간에 앉아 그런 모습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있던 누렁이는 은근히 속이 상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바둑이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바둑이는 하는 일이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들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둑이가 하는 일이라고는 길가에 숨어 있다가 도망치는 개구리나 들쥐. 그리고 벌레들을 잡아먹는 일이 고작입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누렁이는 주인아저씨나 지윤이의 마음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속이 상했습니다.


매일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을 하는 누렁이는 거들더 보지도 않고 매일 놀고 먹기만 하는 바둑이가 뭐가 그렇게 좋아서 야단들인지 누렁이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멍- 멍ㅡ 멍-“


누렁이가 이렇게 신세 한탄을 하며 한숨만을 쉬고 있을 그때 마침 바둑이가 갑자기 큰소리로 짖기 시작했습니다.


그바람에 누렁이는 눈을 번쩍 뜨고 밖을 내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아습니다. 인기척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둑이는 여전히 고개를 치켜들고 더 사납게 계속 찢어대고 있었습니다.


누렁이는 바둑이가 쳐다보며 짖고 있는 밤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습니다.

어느 틈에 동쪽 하늘에는 둥근 달님이 높이 떠올라 온 세상을 밝게 비춰주고 있었습니다.


"아니, 달님을 보고 저렇게 짖다니, 저런 멍청한 녀석이 다 있나!”


누렁이는 달님을 바라보며 사납게 짖고 있는 바둑이를 보자 못마땅한 듯 혀를 찼습니다.

그러자 바둑이도 누렁이가 흉을 보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짖기를 멈추고 곧 제 집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방은 다시 조용해 졌습니다.


누렁이는 마냥 인자하게 생긴 달님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렇지! 사람들은 가끔 달님한테 소원을 빈다고 했지. 그럼 어디 나도 한번 달님한테 부탁을 해 봐야지.“

누렁이는 천 근이나 되는 몸을 무겁게 늘어뜨리고 있던 몸을 추스른 후, 무릎을 얌전히 꿇고 달님을 향해 똑바로 앉았습니다. 그리고 달님에게 빌기 시작했습니다.


"달님, 제발 소원이니 이 불쌍한 저의 부탁을 하나 들어주시겠어요?"


그러자 달님은 곧 더욱 환해진 얼굴로 누령이를 내려다 보며 아주 인자한 목소리로 조용히 되물었습니다.

”그래. 어려운 일이 아니라면 들어주지, 어디 무슨 얘긴지 말해 보렴.“


누렁이는 달님과 벌써부터 가까이 지내던 것처럼 달님이 그렇게 고맙게 느껴질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바둑이처럼 제발 개가 되게 해주셔요.“

”아니 하필이면 개가 되고 싶다니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냐?”


달님이 눈이 갑자기 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저도 이제부터는 매일 바둑이처럼 편안히 놀고 앉아서 식구들한테 귀여움을 받고 싶어요.“


"허어, 모르는 소리. 너는 그렇게 힘든 일을 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어쩌면 바둑이보다 더 큰 사랑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란다. 다만 네 덩치가 너무 커서 너를 쓰다듬어 주거나 안아주지 못할 뿐이지 속으로는 너를 많이 사랑하고 있단다.“


"피이, 제가 사랑을 받고 있다고요? 그렇다면 왜 날마다 저를 몽둥이로 심하게 때려가면서 힘든 일을 시키겠어요? 그런 소리 마시고 제발 저를 개가 되게 해주셔요.“


"오냐, 알았다. 네 소원이 정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그러나 너를 완전한 개로 변하게 할 재주가 없단다. 다만 목소리만은 바꾸어 줄 수 있는데 그래도 괸찮겠니?“


누렁이는 달님의 말에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그렇게라도 해 달라고 애원을 하였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가만히 눈을 감고 잠이 들 때까지 하나, 둘을 세어 보렴.“


누렁이는 달님이 말한 대로 두 눈을 꼭 감고 열심히 수를 세기 시작했습니다.


"멍-멍—멍ㅡ”


얼마나 오랫동안 세고 있었을까? 누렁이의 귓결에 어렴풋이 바둑이의 짖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옵니다.

누렁이는 순간, 두 눈을 번쩍 뜨고 밖을 내다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이웃집에 마실을 갔던 아저씨가 대문을 열고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인기척을 들은 바둑이가 급히 뛰어나갔습니다. 그리고 반가움에 펄쩍펄쩍 뛰면서 주인아저씨에게 매달리며 꼬리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어이구, 우리 바둑이가 여태 자지 않고 나를 기다려 줬구나.”


주인아저씨도 반가움에 바둑이를 어루만져 주고 있었습니다.


’옳지, 이때다! 나도 저렇제 짓고 매달리면 되겠지!‘


이렇게 생각한 누령이는 저도 모르게 바둑이처럼 멍멍 짖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누렁이의 입에서는 달님의 말대로 신기하게도 황소의 울음소리가 아닌 개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멍-멍ㅡ멍ㅡ“


누렁이는 신이 나서 주인아저씨를 향해 연신 짖어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갑자기 어리둥절해진 얼굴로 누렁이를 바라보며 소리쳤습니다.


"아니, 이놈의 소가 갑자기 미친 거 아니야?“


뜻밖에도 귀여움을 받기는커녕 이번에는 일그러진 얼굴로 미쳤다고 소리치는 주인아저씨의 말에 누렁이도 그만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게 소는 어디까지나 소 다워야 한다니까, 쯧쯧쯧…….“


한동안 아무 말없이 누렁이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던 달님이 혀를 끌끌 차면서 어느새 서산으로 숨어버리고 말았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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