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너무한 거 아니야?

[꽁트]

by 겨울나무

’갑자기 무슨 일 때문에 날 만나보자는 거지?‘


창배가 뜻밖의 형사로부터 전화를 받게 된 것은 지루한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이제 막 퇴근 준비를 서두를 무렵이었다. 형사라고 밝힌 그는 전혀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람이었다. 더구나 약간 위협적이며 무례하기 그지없는 불쾌한 목소리였다.

창배는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불길하면서도 두려운 생각에 금세 납덩이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창배는 곰곰히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형사가 자신을 찾을만한 실수나 잘못을 저지른 일이라고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역시 형사가 한번 만나보자고 할 정도로 잘못을 저지른 기억이라고는 좀처럼 떠오르지를 않았다.

’내가 지레 겁을 먹고 이럴 게 아니지. 아마 아무 일도 아닐 거야!‘


창배는 아무 일도 아닐 것이라고 마음을 달래며 침착해 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가슴 속에서는 두 방망이질을 하며 두근거리고 있었다. 순간 지금까지 성실하게 살아온 직장인이 아니라 어느새 돌이킬 수 없는 대단한 범죄를 저지르고 형사들에게 쫓기고 있는 범인이 된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하였다.


'에라, 까짓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칠 일이지,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


한동안 일그러진 표정이 되어 생각에 잠겨 있던 창배는 마침내 형사와 만날 것을 결심하고 퇴근을 서둘렀다.

거리로 나서자 흐렸던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금방 산 비닐우산을 쓰고 오가는 행인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창배는 지금 그런 광경을 바라볼 겨를이 없었다. 우산을 살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비를 그대로 맞으며 형사와 약속한 커피숍을 향해 부지런히 걷고 있었다. 그런 창배의 심정은 마치 죽음을 각오하고 격전지를 향해 돌진하는 용감한 병사와도 다름이 없었다.


마침내 약속했던 커피숍 앞에 다다르자 일단 긴 심호흡부터 했다. 그리고 출입문을 슬그머니 열고 잠시 사방을 두리번거리자 구석 자리에 앉은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면서 흔들어주고 있었다. 보나마나 미리 약속했던 형사임이 틀림없었다. 첫눈에 창배의 얼굴을 알아보는 걸 보면 벌써부터 창배의 얼굴을 알고 있는 듯했다.

“번거롭게 해드려서 미안합니다. B 경찰서 수사과에 있는 박형사라고 합니다."


창배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형사는 안주머니에서 신분증부터 꺼내 보였다. 점퍼 치림의 체격이 매우 건장한 그의 인상이나 말투는 첫눈에 보기에도 노련한 형사티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아,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만…….”


그렇지 않다도 겁을 먹고 있던 창배는 그의 건장한 체격과 무서운 눈초리에 금방 주눅이 든 채 잠자코 형사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입을 꼭 다문 채 한동안 창배의 표정만을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던 박형사가 마침내 무거운 입을 열었다.

"직접 회사로 찾아가서 말씀드릴까 했지만, 혹시 동료 직원들한테 이상한 오해를 받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밖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래야만 서로 간의 부담도 적을 것 같고 불필요한 기밀도 새나가지 않을 테니까요.”


“아아, 예,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고 있는 것일까. 창배는 갑자기 입 안이 바작바작 타고 불안해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별 수 없이 형사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때, 갑자기 박형사가 결심이라도 한 듯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럼 먼저 무례하게 불쑥 찾아뵙게 된 용건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아, 네. 무슨 말씀이신지……?"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창배의 또다시 덜컥 내려앉고 말았다.


“김지숙이라는 아가씨를 알고 있죠?"


“네, 네, 그 그렇습니다만…….”


창배의 목소리는 자신도 모르게 떨려 나오고 있었다. 박형사의 입에서 전혀 상상조차 못했던 지숙이란 이름이 튀어나 왔기 때문이었다. 창배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머뭇거리고 있을 때, 형사는 틈을 주지 않고 다시 물어왔다.

그의 눈은 흡사 오랜만에 맛있는 먹이를 발견한 굶주린 맹수의 눈처럼 표독스럽고 섬뜩하기까지 하였다.

“그 아가씨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정확하게 언제였습니까?"


잔뜩 겁에 질린 창배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킨 뒤에야 겨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 그러니까 저, 정확하게 사흘 전이었습니다만…….”


“그날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어디서 무얼 하셨죠?"

“퇴근 후, 그러니까 정확하게 여섯 시 반부터 여덟 시 반까지 S동에 있는 음식점과 커피숍에서 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약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곧 헤어졌습니다. 그, 그런데 왜 그러시죠?”


창배의 물음에 박형사의 표정이 다시 험하게 일그러졌다.

"묻는 말에만 대답을 하세요. 그건 그렇고, 정확히 여섯 시 반부터라는 것은 어떻게 기억하죠?"


"그건 그 아가씨가 여섯 시 반에 음식점에서 만나자는 전화를 했고, 저는 또 정확하게 그 시간에 맞춰 그 맛집에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그럼 그날 저녁에 그 아가씨와 대강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죠?"


”무슨 일 때문인지도 모르고 그런 것까지 말씀드려야 할 필요가 있는 건가요?“

”아암, 그렇고말고요. 제가 방금 묻는 말에만 대답해 달라고 말씀드렸죠?“

박형사의 강압적인 태도에 창배는 너무나 억울하면서도 자존심이 상한 나머지 그만 울상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너무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이 되어 박형사에게 되묻게 되었다.


“전 뭐가 뭔지 몰라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 제가 그 아가씨를 만난 것이 무슨 잘못이라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러자 박형사가 이번에는 갑자기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절대로 그런 뜻은 아닙니다. 제가 너무 급히 서두르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결례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아가씨 신변에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나보다도 오히려 선생께서 먼저 잘 알고 있는 일이 아닐까요. 안 그렇습니까?"


창배는 지금 박형사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너무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노릇이었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형사가 점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고 있었던 것이다. 창배가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는 듯 더욱 불안해진 표정이 되어 다시 되묻게 되었다.


“알고 있다니 제가 도대체 뭘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전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 순간, 박형사의 얼굴이 다시 무섭게 일그러지면서 마침내 그가 큰소리로 다그치고 있었다.

“이봐요! 다 알고 왔는데 그렇게 시치미를 잡아뗀다고 그냥 넘어가게 될 줄 알았어요?"

“아니, 제가 시치미를 떼다니요?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전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니까요."


그러자 형사의 표정이 갑자기 얼음장처럼 싸늘하게 굳어지고 말았다.


"허어, 이 양반 체면을 생각해서 조용히 끝내려고 했더니 아무래도 경찰서로 연행을 해야 되겠구먼. 오늘 아침에 신문이나 방송도 안 봤어요?”


“……?”


창배는 박형사가 하도 험한 표정으로 다그치는 바람에 어안이 벙벙해져서 아무 대꾸도 못하고 그저 멍한 표정으로 박형사의 얼굴만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창배의 심정은 말할 수 없이 불안했다. 자존심까지 한꺼번에 구겨지고 만 꼴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느닷없이 형사가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몹시 두렵고 불안한 창배였다.


더구나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숙에 관한 사건이 방송까지 나왔다는 박형사의 말에 예삿일이 아니라는 예감에 더욱 창배를 불안에 떨게 하였다.


창배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입을 꾹 다문 채 말을 못하자, 이번에는 형사가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다시 묻겠는데 그 아가씨와 만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어요?"

“제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부터였으니까 약 4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어떤 동기로 서로 만나게 되었죠?”

“그 아가씨는 같은 학교 2년 후배입니다. 그리고 마침 대학 예술제에서 연극을 하게 되었는데 저와 그 아가씨는 주연을 맡게 되었습니다.”


박형사가 이해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하, 그래서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둘이 자주 만날 기회를 갖게 되었겠군요?"


"네,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두 분은 그저 친구 관계였습니까, 아니면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습니까?"

“우린 각별히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두 사람중에 누가 더 사랑을 하였습니까? 아가씨였습니까? 아니면 선생입니까?"


창배가 듣기에는 박형사의 질문이 갈수록 듣기에 역겹고 자존심이 상해 참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참다 못해 다소 성이 난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아니 그런 것도 대답해야 한단 말입니까?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물론 그러실 것입니다. 그러나 꼭 필요해서 묻는 말이니 협조해 주셔야만 합니다.“


창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마음을 누그러뜨린 다음 다시 사실대로 입을 열게 되었다.


“그 아가씨는 처음부터 저를 몹시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지금까지 그 여자 외에 다른 여자를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오직 그 아가씨만을 사랑해 왔고 또한 앞으로도 계속 그 아가씨를 사랑할 것입니다."


“아하, 그렇다면 그 아가씨의 어떤 면이 그렇게 마음에 드셨는지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아무 조건 없이 무조건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까지도 자세히 말씀드려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이번 사건은 특히 그런 것도 수사에 도움이 될 수가 있습니다. 에 또 그건 그렇고……”

박형사는 지금까지 창배가 대답한 내용을 하나도 빠집없이 적은 수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한동안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시간이 흐른 뒤에 매우 난처한 표정이 되어 창배를 바라보며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에에또오~~ 이건 직업이 직업이라 어쩔 수 없이 미리 양해를 구하고 말씀드립니다만 이런 실례의 질문을 해도 될지 모르겠군요."


이번에는 창배가 체념한 듯 여전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또 뭐가 더 남았단 말입니까? 마음대로 더 물어보십시오.”

“좋습니다. 그럼 그 아가씨와의 관계는 어느 정도였습니까?"

"관계라니요?"

"그렇게 나오실 줄 알았습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면, 현재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느 정도 깊었는가를 꼭 알고 싶다는 말씀입니다."


순간, 창배는 심한 모욕감과 불쾌감을 느낀 나머지 안색이 벌겋게 변하면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아니, 뭐라구요? 아무리 직업도 형사라 하지만 그런 모욕적인 질문은 삼가주셨으면 합니다. 정말 불쾌해서 더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한번 하늘을 두고 맹세합니다만 우리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아직까지 순수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너무 불쾌한 질문이었다면 우선 사과부터 드립니다. 에또 그건 그렇고, 그럼 그 아가씨의 가족관계라든가 가정 형편이라든가 가족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잘 알고 있겠군요?"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네에? 그렇지 않다니요? 그건 왜죠?"


형사는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물었다.


“그 아가씨는 그리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나 설상가상으로 아버님까지 일찍 여의게 되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어머님과 단 하나뿐인 오빠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대학까지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항상 가정에 관한 이야기만은 되도록 안 하는 편이었습니다. 그 대신 오빠의 자랑을 자주 하던 아가씨였습니다.”


"아, 그랬었군요? 그럼 오빠에 대해서는 주로 어떤 자랑을 하던가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몹시 사랑하고 귀여워 해 주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때로는 오빠를 아버지처럼 존경하고 따랐다고 하였습니다.”


"아하,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럼 오빠는 무얼 하시는 분입니까?"


“잘은 몰라도 아마 건축업 쪽에서 일을 하고 계시다는 말을 얼핏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운이 좋아서 그런지 수입이 대단한 편이라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한 적도 있습니다."


“그랬군요. 그럼 오빠의 나이가 많은 편이겠군요?"


“그렇습니다. 그 아가씨보다 여덟 인가 아홉 살쯤 많다고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혹시 그 아가씨의 어머님이나 오빠를 만나본 적은 있습니까?"


“아닙니다. 전혀 없었습니다."


“그럼 그 아가씨와 사귀는 동안 아가씨의 어머님이나 오빠를 만나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까?"


"웬걸요. 항상 만나보고 싶었죠. 그런데 무슨 일인지 항상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뒤로 미루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만나 뵙지를 못했습니다.”

창배는 여기까지 설명하고 나서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참 이제야 생각이 나는 게 있습니다. 며칠 전에 그 아가씨가 느닷없이 조만간 오빠를 한 번 만나게 해 주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요? 어떻게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구체적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오빠가 저를 한 번 직접 만나보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 그랬었군요.


박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갑자기 어떤 결심이라도 한 듯 창배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만일 말입니다. 이런 질문을 드린다는 것은 큰 실례가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 만일 그 아가씨가 이번 사고로 불행하게도 생명을 잃게 되었다면 선생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네? 뭐, 뭐라고요?"

순간 창배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지면서 말도 되지 않는 소리 말라는 듯 박형사의 얼굴을 무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아, 아닙니다. 허허허……. 너무 흥분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이건 어디까지 가정이라고 미리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창배는 몹시 불쾌하다는 듯 더욱 벌개진 얼굴로 형사를 쏘아보면서 조금 전보다 더욱 흥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 형사님은 저한테 도대체 무얼 요구하고 계신 겁니까?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을 가지고 그게 무슨 실례의 말씀입니까? 다시 한번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만, 저는 그 아가씨가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형사님의 말씀대로 그 아가씨가 잘못되었다고 한다면 저 역시 아무 미련없이 그 뒤를 따를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

창배는 기왕에 내친 김에 벌겋게 달아오른 표정으로 자신의 각오를 거침없이 털어놓게 되었다. 한동안 그런 창배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박형사는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고개만 끄덕이다가 다시 천천히 무거운 입을 열었다.


"아, 알겠습니다. 너무 흥분하지 마십시오. 그 아가씨는 바로 어제 저녁에 음독 자살을 기도하다가 불행 중 다행으로 미수에 그쳐 지금은 중태에 빠져있습니다. 유서 한 장 없었고요."

“네에? 그, 그럴리가……?”


형사의 설명에 창배는 순간 쇠뭉치로 뒤통수를 심하게 얻어맞은 심한 충격에 눈 앞이 캄캄해지면서 아찔하여 좀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런 창배를 바라보며 박형사가 위로하듯 다시 입을 열었다.

"아마 곧 회복될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 마시고 우선 진정하십시오. 자, 그럼 오늘은 이만 실례하고 다음에 기회에 다시 뵙겠습니다. 좀 어렵겠지만 앞으로 연락을 드리면 언제든지 다시 경찰서로 나와 주셔야 합니다. 자, 그럼……."

박형사가 무슨 말인지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창배의 귀에 그의 말이 제대로 들려올 리가 없었다.


한동안 두 눈을 꼭 감은 채 의자에 기대어 앉아 진정을 한 뒤, 겨우 정신을 차린 창배는 그제야 커피숍을 나와 휘청거리는 걸음걸이로 밖으로 나왔다.


빗줄기는 아까 커피숍으로 올 때보다 더 거세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지금 어느 병원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렇게 밝기만 하던 지숙이가 갑자기 무슨 까닭으로 갑자기 음독자살을 기도했다는 말인가!'


창배는 굵게 쏟아져 내리는 비를 우산도 없이 그대롷 맞아가며 겨우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형사한테 어느 병원에 입원을 했는지를 물어보고 찾아가 볼까 생각도 했지만 지금 상태로는 너무 힘이 빠져 그럴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또한 병원에 간다 해도 다시 형사나 기자들한테 시달릴 것이 뻔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창배는 비에 흠뻑 젖은 옷을 벗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침대에 아무렇게나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띠리링~~~~! 띠리링~~~~!”


그때 갑자기 휴대폰이 울리시 시작했다. 창배는 귀찮다는 듯 그대로 누운 채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을 꺼내드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뜻밖에도 지숙이한테서 온 전화였기 때문이었다. 급히 전화기를 귀에 댔다.


“이제 집에 들어오셨나 봐요? 저예요 저, 지숙이. 호호호……. 오늘 우리 오빠 만나보셨죠? 소감이 어때요?"

”……?”


전화기에서는 뜻밖에도 지금 중태에 빠져있다는 지숙이의 밝고 환한 목소리가 오들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엉?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창배는 마치 꿈속이라도 헤매듯 몽롱해지면서 아무 대답도 할 힘이 없었다. 그러자 지숙이의 밝은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금 전에 우리 오빠와 커피숍에서 만나셨다죠? 우리 오빠 연기 어땠어요? 우리 오빤 가끔 그렇게 엉뚱한 면이 있다니까요. 오빠는 창배 씨가 아주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하던데요. 호호호…….”

“……!”


창배는 그제야 겨우 어떻게 된 상황 파악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창배의 입에서는 너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소리 같은 음성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헛허허……. 하지만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난 그런 줄도 모르고 감쪽같이 속고 말았다니까, 헛허허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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