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줌의 흙(15)
[쇼팽(1810-1849)]
세계적인 음악가 쇼팽은 폴란드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아버지와 귀족 출신이며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쇼팽은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해 여덟 살 때에는 자선음악회에서 공개 연주를 하는 등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피아니스트로서의 명성뿐만 아니라 뛰어난 피아노곡을 작곡한 음악가로서도 그 명성이 높다. 그가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도 피아노가 아니면 그 묘미를 살릴 수 없는 수많은 곡들을 작곡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쇼팽은 피아노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면으로도 폴란드 전 국민들에게 오래 기억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쇼팽이 젊은 시절 음악공부를 더욱 많이 하기 위해 고국인 폴란드를 떠나 프랑스로 유학을 갈 때의 일이다.
그때, 배웅을 나온 쇼핑의 아버지가 엄숙한 목소리로 쇼팽에게 신신당부하게 되었다.
"너는 언제 어딜 가나 폴란드 사람임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너의 행동으로 인해 우리 폴란드의 명예를 조금이라도 손상시키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자 그 때 함께 전송을 나온 음악학교의 교장 선생도 한 마디 거들었다.
"지금 아버님이 하신 말씀을 꼭 명심해 주기 바라네, 그리고 우리 폴란드의 향기와 얼이 담긴 이 한 줌의 흙을 자네에게 선물로 주니 항상 몸에 소중히 간직하고 다니면서 우리 폴란드의 고마움을 절대로 잊지 말기만을 바라네."
교장 선생은 이렇게 당부하면서 은잔에 담긴 한 줌의 흙을 쇼팽에게 건네 주었다. 쇼팽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흙이 담긴 은잔을 조심스럽게 받아 품속에 꼭 껴안으면서 벅차오르는 감격에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교장 선생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프레데릭 군, 폴란드 온 국민들은 자네의 존재를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으며, 항상 자네의 성공만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폴란드 국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부디 명심하고 잊지 말아 주기 바라네.“
쇼팽의 젊은 시절, 폴란드는 러시아 등,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한창 위기에 처해 있었으며 폴란드의 애국자들에게는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자 하는 의지가 그 어느 나라보다 강했다.
쇼핑은 그와 같은 의지가 담긴 한 줌의 흙을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한 채 고국을 떠나 프랑스로 향하였다.
쇼핑은 안타깝게도 서른아홉 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그는 그동안 고이 간직하고 있던 한 줌의 흙을 내밀면서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제가 죽거든 고국을 떠날 때 간직해 온 이 한 줌의 흙과 함께 묻어 주시오."
쇼팽의 그 한마디 유언만 들어보아도 그의 애국심이 얼마나 대단하고 강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만한 대목이라 하겠다.
그와 같은 예를 보아도 쇼팽은 오직 자나깨나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을 품고 피아노 건반을 미친듯이 두드리며 피로 물들였던 정열의 시인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