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가을 저녁의 산책길(1)

[분단의 비극, 그리고 달라진 언어의 비극]

by 겨울나무

오늘도 저녁을 먹고 난 성실 씨 가족들이 거님(산책)도 할 겸 바람도 쐴 겸 밖으로 나갔다.


바깥 날씨는 하루가 다르게 쌀쌀해지고 있었다. 낮에는 그런대로 지낼 만했는데 저녁때는 그게 아니었다.


성길 씨가 몸을 움츠리며 먼저 입을 열었다.


”혜영아!“

”응?“


”아빠는 이렇게 추운데 넌 춥지 않니?“

”난 그런대로 견딜만 해. 그런데 아빠는 북한에서 살았다면서 이런 추위도 못 이겨?“


”하하하……. 히야아, 이제 보니까 우리 혜영이 장사로구나. 이거 혜영이한테 오늘 아빠가 단단히 창피를 당하는걸. 아무래도 안 되겠다. 아빠는 내일부터는 ①뜨개옷을 입고 나와야 되겠는걸.“


”우와아~~~ 엄마도 약간 추운데 우리 혜영이 정말 장사로구나!“

”에이 이까짓 조금 쌀쌀한 걸 가지고 뭘 춥다고 그래?“


칭찬을 받은 혜영인 이렇게 대꾸하고는 보란 듯이 겅중겅중 앞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성길 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게 날씨가 쌀쌀할 때는 그저 시골 마당에 화끈하게 ②무덕불을 지펴놓고 감자나 고구마를 구워먹어야 제격인데.“


성길 씨의 말에 아내가 물었다.

”당신도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어요?“


”아암, 있고말고. 매일 그러다시피 했지. 북한에서는 아무리 ③아글타글 살아봐도 ④옥쌀밥 한번 변변히 얻어먹기 힘이 든단 말이야. 그러니까 혹시 고구마나 감자, 그리고 옥수수가 그나마 있으면 무덕불에 구워 먹으면서 끼니를 때곤 했지.“


”그렇게 살아가기가 힘이 드는군요?“

”아암, 우리 대한민국보다 몇 배나 더 힘들고말고.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은 ⑤면비교육을 시키고 있어서 혜영이 같은 학생들 학비 걱정도 없으니 얼마나 좋으냐구.“


그런데 그때였다.


저만히 앞으로 뛰어가고 있던 혜영이가 무슨 일인지 ⑥물레걸음을 치고 있었다. 깜짝 놀란 아내가 무슨 일인가 하고 혜영이를 향해 소리쳤다.


”혜영아! 무슨 일이니? 왜 그래?“


그러나 혜영이는 아무 대답이 없이 여전히 겁에 질린 듯 물레걸음을 치고 있었다.

”……?“

”……?“

성길 씨 부부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혜영이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 )







※ 참고


① 메리야스 ② 모닥불 ③ 악착스럽다 ④ 옥수수가루쌀 ⑤ 무상교육 ⑥ 뒷걸음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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