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혜영이의 숙제

[분단의 비극, 그리고 달라진 언어의 비극]

by 겨울나무

한동안 방에서 숙제를 하고 있던 혜영이가 공책과 연필을 들고 거실로 뛰쳐나오더니 성길 씨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아빠, 어제 학교에서 북한말 10가지 이상 알아오라는 숙제를 내주었거든.”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 아빠는 북한에서 살아봤으니까 북한말은 잘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 빨리 열 가지만 알려줘 봐.”

“그래? 학교에서 웬일로 그런 숙제를 다 내주는구나. 그럼 아빠가 북한말을 알려줄 테니 네가 먼저 맞추어 보지 않을래? 우리 혜영이가 다 맞히면 맛있는 거 사줄게.”


“그래? 좋아. 그럼 어디 말해 봐.”


이렇게 해서 혜영이는 성길 씨가 알려주는 북한말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성길 씨는 한동안 생각하다가 문제를 내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자, 그럼 무슨 말부터 해볼까? 너 한 개라도 못 맞추면 아빠가 맛있는 거 안 사준다, 알았지?”

“그건 너무 하잖아. 6개 이상 맞추면 사주기로 해. 알았지?”


“좋아. 그럼 첫 번째 문제 나간다. ①꿈밖이 무슨 말일까?”

“으음, 잠을 자다가 깼을 때가 아닐까?”


"땡! 안타깝지만 틀렸어요."

“아빠, 그런 게 어디있어. 힌트를 줘야지.”

“아니야. 이런 문제를 가지고 힌트를 주면 어떻게 하니 그런 거 없단 말이야. 자, 그럼 두 번째 문제는 ②꿀비가 무슴 말일까?”


꿀비라는 말에 혜영이가 자신이 있는 듯 얼른 대답했다.


“응 이번 문제는 알겠다. 바다에서 나오는 조기, 맞지?”

“땡! 이번에도 틀렸어요. 생선을 말하는 게 아니거든요.”


이번에도 틀렸다는 말에 혜영이의 표정이 그만 시무룩해지고 말았다. 그러나 성길 씨는 신이 나서 다음 번 문제를 내고 있었다.

“그럼 ③입떠서다는 무슨 말이지?”


혜영이가 잠시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이번에는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얼른 대답했다.

“그건 너무 피곤할 때 부르튼 입술을 말하는 거 아니예요? 맞죠?”


“하하하, 땡! 당신도 틀렸어요. 그게 아니거든요. 그럼 네 번째 문제 나갑니다. ④단고기는 어떤 고기를 말하는 것일까?”

이번에도 아내가 얼른 대답했다.

“그건 고기에 양념과 설탕을 넣어서 달게 만든 양념고기 아니예요?”


“땡!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에요. 그럼 이번에는 ⑤직장세대란 무엇일까요?”


이번에도 아내가 자신있는 듯 얼른 대답했다.


“그건 직장에 다닐 수 있는 나이 즉, 젊은 세대를 말하는 거 맞죠?”


“젊은 세대라. 땡! 땡! 아주 틀려도 한참 틀렸어요. 그럼 다시 다음 문제 나갑니다. ⑥집단체조란 어떤 체조를 말하는 걸까요?”


이번에는 한동안 입을 쑥 내밀고 있던 혜영이가 얼른 대답했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나가서 음악에 맞추어 운동을 하는 거 아니야?”


“땡! 안타깝지만 그게 아닙니다. 하하하…….”


그러자 혜영이가 발끈 성질을 내며 소리쳤다.


“치이, 하나도 못 맞히고 자꾸만 틀리기만 하는데 아빤 약오르게 웃긴 왜 웃어? 그거 북한말 더럽게 어렵네. 좀 쉬운 걸로 내란 말이야.”

“그래. 알았어. 그럼 이번에는 좀 쉬운 문제를 낼게. 너 국어 배우고 있지?”


“물론이지.”

“그럼 국어에서 ⑦글토막이란 말이 있는데 글토막이란 무엇을 말하는 거지?”


“글토막이라! 그거 낱말을 말하는 거 아니야?”

“땡! 거의 맞히긴 했지만 아깝게도 이번에도 틀렸어요. 자, 그럼 다음 문제 나갑니다. 이번에는 좀 더 어려워요. ⑧토법이란 무슨 말일까?“


”…….”

“…….”


이번 문제는 너무 어려웠는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혜영이는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입을 쑥 내밀고 있었다.

“하하하, 내가 너무 어려운 문제들만 내서 우리 혜영이가 화가 났구나. 그래도 아빠가 맛있는 것은 사줄 테니까 아무 걱정마라. 알았지?”


혜영이나 너무 성질이 난 모습을 본 성길 씨는 껄껄 웃으면서 지금까지 낸 북한말에 대해 처음부터 하나씩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 참고


① 뜻밖 ② 단비 ③ 힘차게 일어서다 ④ 개고기 ⑤ 맞벌이 부부 ⑥ 마스게임 ⑦ 문장 ⑧ 민간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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