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시장 보고 온 날

[분단의 비극, 그리고 달라진 언어의 비극]

by 겨울나무

오늘도 아내가 시장엘 갔다가 돌아왔다.


성길 씨가 벌떡 일어나서 아내가 들고 있는 ①방막을 얼른 받아들면서 물었다.

”아니 무거운데 웬걸 이렇게 많이 사 왔어?“


”많다니요. 아무리 어려워도 먹고 살기는 해야 하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런데 아까 내가 당신이 너무 늦기에 ② 손전화③ 통보문을 몇 번이나 보냈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던걸.“

”그랬어요? 내가 소리를 미처 듣지 못해서 그랬나 봐요.“

성길 씨는 아내가 사 온 반찬거리들을 ④ 가시대 위에 하나하나 정리하다가 눈이 휘둥그렇게 되며 다시 물었다.

“아니 이 ⑤가두김치는 무얼 하려고 사온 거야?”


“무얼 하기는요. 혜영이나 당신 돈가스도 좋아하고 샌드위치도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큰맘 먹고 사온 거죠.”

아내의 말에 성길 씨의 안색이 밝아지며 다시 물었다.


“그래? 좋아하긴 하지만 그런 걸 만들려면 식빵이나 돈가스 재료도 있어야 하잖아?”


“그러니까 오늘은 큰맘 먹고 모두 사 왔다니까요. 그리고 가두김치는 날로 먹어도 우리 몸에 아주 좋다고 하더라고요.”


“아암, 좋고말고. 이제보니까 당신 아주 ⑥쌩한걸. 그래 맞았어. 아무리 형편이 어렵긴 해도 사람이 ⑦ 허약에 걸리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가 말이야. 그러니까 뭐니뭐니 해도 사람은 우선 건강이 최고거든.”

“누가 그걸 모르나요? 그놈의 돈 때문에 그렇지요.”


“참, 당신 시간이 나는 대로 ⑧진료소에 한번 가보는 게 어때?”


“갑자기 거긴 왜요?”


“왜라니? 요즘 당신 안색이 점점 안 좋아 보여서 그러는 거지. 영양보충을 제대로 못해서 그런 것 같으니 웬만하면 영양제 ⑨ 방울주사라도 한 대 맞아보란 말이야. 그래야 나도 당신한테 밥을 얻어먹고 살 거 아니야.”


“으이구, 당신 생각이 고맙긴 하다만 그 정도는 아니네요.”


“허허,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말이야. 그래, 이제부터 우리도 ⑩ 발볌발볌하면서 열심히 살아보자구.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쥐구멍에도 볕들 날은 있겠지.”


“호호호, 그래요. 그렇게 해 보자구요.”


아내는 오랜만에 얼굴 가득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음식을 만들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 * )




※ 참고


① 비닐봉투 ② 휴대폰 ③ 문자 ④ 싱크대 ⑤ 양배추

⑥ 멋지다 ⑦ 영양실조 ⑧ 보건소 ⑨ 링거 ⑩ 한걸음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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