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하며 깊이 생각해 보기(20)]
♣ 자유를 위협하고 압박하고 빼앗고 속이고 짜내는 것은 악마의 자유다.
< 라바타 >
♣ 사람은 항상 어떤 범죄를 일으키기 위하여 한가한 사람을 찾는다.
< 라브엘 >
♣ 만약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결국 인간이 그것을 만들어낸 것이 된다. 인간은 기어코 자기 모습과 닯은
악마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 F. M. 도스토예프스키 >
♣ 악마는 우리들을 유혹하지 않는다. 우리들이 악마를 유혹하는 것이다.
< G. 엘리어트 >
아주 오랜 옛날, 동수네 집에 귀엽게 생긴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온몸이 온통 누런 색깔로 덮여 있어서 강아지의 이름은 누렁이였다.
그 시절에는 다른 집들도 마찬가지였지만, 동수네 집 역시 가난했다. 사람도 먹을 양식이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제대로 먹을 것을 얻어먹지 못한 누렁이는 늘 배가 고팠다.
고작 쌀뜨물에 먹다 남은 밥 찌꺼기를 조금 섞어서 주는 먹이로 겨우 연명하며 허기진 배를 달래며 자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밥 찌꺼기도 나오지 않는 날은 쌀뜨물에 쌀겨만 멀겋게 타서 주는 먹이였지만, 감지덕지하며 주는 대로 받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배가 늘 고프기는 했지만, 누렁이는 그런대로 행복했다. 동수가 누렁이를 볼 때마다 몹시 귀여워 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수 아버지나 동수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누렁이를 볼 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그렇게 사랑하고 귀여워해 줄 수가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누렁이
는 몹시 만족하고 행복했다. 더 바랄 게 없었다.
누렁이는 마침내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배가 고프고 힘은 들기는 했지만, 이 집 식구들의 따뜻한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오직 이 집 식구들을 위해 죽을 때까지 몸 바쳐 충성을 다하는 일밖에 없다고…….
비록 얻어먹을 것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였지만, 누렁이는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 큰 개로 성장하였다.
어쩌다 낯선 사람들이 동수네 집에 가까이 오기라도 하면 사납게 짖어댔다. 집을 지키기 위해서 누렁이가 할 일은 그것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밥값이며 이 집 식구들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동수 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러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동수 아버지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다 어쩌다 낯선 사람이 나타날 때마다 무섭게 짖어댔다. 동수 아버지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기는 이 집 식구들이 밭이나 논에 갈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웬, 험상궂게 생긴 낯선 남자 하나가 자전거를 타고 동수네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누렁이는 그 남자 앞으로 달려들며 사납게 짖어대고 있었다.
동수 아버지가 아무 걱정말라는 듯 다정스러운 목소리로 누렁이를 달랠주고 있었다.
“누렁아! 짖지 마라. 괜찮아, 괜찮아.”
그래도 누렁이는 금방이라도 물어뜯을 듯이 여전히 짖어대고 있었다. 그러자 낯선 남자가 싱글싱글 징그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개가 말라서 근량이 별로 안 나가겠는데요.”
누렁이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계속 짖어대고 있었다.
이번에는 동수 아버지가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보기에는 그래도 얼마나 살이 오른 건데. 그러니까 잘 좀 쳐줘요.”
두 사람은 한동안 흥정을 하기 위해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무슨 영문인지를 모르는 누렁이는 여전히 사납게 짖어대고 있었다. 그것만이 오직 주인을 위해 끝까지 충성을 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었기에…….
누렁이가 계속 짖어대자 이번에는 동수 아버지가 인자한 목소리로 누렁이를 달래며 불렀다.
“누렁아, 착하지. 너무 짖지 말고 이리 온.”
누렁이는 잠시 짖기를 멈추고 동수 아버지 곁으로 꼬리를 흔들며 다가갔다. 동수 아버지는 누렁이의 머리와 목을 사랑스러운 손길로 쓰다듬으며, 안 됐다는 듯 입을 열었다.
“누렁아, 그동안 고마웠다. 이제 그만 좋은 데로 가서 행복하게 살아라. 응?”
그리고는 뒤에 숨겨두었던 밧줄을 누렁이의 목에 감더니 밧줄의 끝을 남자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남자는 밧줄을 힘껏 당기고 있었다.
누렁이는 목이 졸려 곧 숨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앞 다리 두 개를 아무리 버티고 힘을 주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었다.
남자에게 끌려가면서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동수 아버지를 흘끔 바라보았다. 동수 아버지는 그저 안 됐다는 표정만 지을 뿐,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때 동수 아버지의 표정, 악마가 따로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