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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elboso Sep 03. 2020

[플랜트 산업 쉽게 접근하기] 플랜트 사고사례 #2

육상플랜트 사고 - 보팔 대참사 (Bhopal, India)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서 플랜트 사고사례, 그 중 육상 플랜트의 사고사례를 전달 드리겠습니다.


육상 플랜트는 땅 위에, 그리고 일반적으로 민가와 떨어진 곳에 건설되기 때문에 지난 주에 전해 드린 해양 플랜트보다 사고 자체가 사회 및 환경에 주는 영향은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아주 상식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비극, 그 중 가장 탐욕스런 이기심에 의해 발생한 최악의 참사를 전달 드리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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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가 된 현장  - https://www.indiatvnews.com/photos/india-34-years-of-1984-bhopal-gas-tragedy-488750/4

1.     사건 개요


1984년 12월 3일 아주 이른 새벽, 인도 마디아프라데시주 보팔시의 주민들은 미국 기업인 유니언 카바이드 (Union Carbide, 현재 다우케미칼. 1999년 다우케미칼이 유니온 카바이드를 930억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사가 설립한 비료 공장의 독성 가스 유출 사고로 처참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눈과 코를 날카롭게 찔리는 느낌에 눈을 뜬 보팔 시의 주민들은 그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피를 토하며 배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고 사지가 뒤틀리면서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거리에는 어제까지 살아있던 모든 것들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사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왜 죽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고통스럽게 죽어갔습니다. 


주민들의 생명을 앗아간 것은 1차 세계대전에도 쓰였던 독가스인 포스겐과 시안화 가스가 뒤섞인 메틸이소시안염(Methyliso-cyanate)이었습니다. 아무런 냄새도 없이 보이지 않게 모두를 죽인 메틸이소시안염은 호흡기 장애, 중추신경 장애, 면역체계 이상, 실명 등의 치명적인 피해를 일으키는 극악한 독성물질입니다. 유니언 카바이드가 유출한 이 독성 화학가스의 양은 무려 39톤에 달했습니다.


2.     피해규모

보팔 참사 현장  - https://www.indiatvnews.com/photos/india-34-years-of-1984-bhopal-gas-tragedy-488750/4

인명 피해

보팔 대참사에 의한 피해는 가스가 유출되었던 그 날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84년 12월 3일에만 약 3500명이 목숨을 잃었고, 환경운동가들은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가 3만 3천여명에 이른다고 발표했습니다. 후유증에 의한 사망자 관련 인도 정부의 공식 발표는 1만 5천 명이지만, 뒤에 말씀 드릴 인도 정부의 대응을 보면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피해 보상을 청구한 사람 기준으로 약 58만 3,000여명의 인구가 가스에 노출되었습니다. 실명, 호흡 곤란과 위장장애 등 만성질환 환자만 12만명, 영구적인 장애 5만명, 그 외에도 보팔시의 주민들은 결핵, 피부 질환, 중추신경계와 면역체계 이상으로 인한 심각한 질병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유니언 카바이드사가 자체적으로 연구한 메틸이소시안염의 영향에 대한 연구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참사의 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1984년 사고 당시 살아남았던 어린 아이들이 성장하여 출산한 보팔의 다음 세대 아이들은 심장 질환, 언청이, 정신 지체 등 각종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관련 사진들이 구글에 많은데..너무 참혹해서 못 올리겠습니다..)


환경 피해

보팔 참사 현장에 방치된 유독성 폐기물 - https://earthrights.org/case/sahu-v-union-carbide/

유니언 카바이드의 가스 유출 사건에 의한 환경 피해도 막대합니다. 참사 지역에서 검출된 수은은 기준보다 최대 6백만배 높고, 보팔 시의 주민들은 12가지의 유독 물질이 들어 있는 식수를 마셔야 했습니다. 상수도가 오염되면서 암을 비롯한 위에 말씀 드린 질병들의 발병율과 기형아 출산율이 치솟았습니다. 극단적으로 무책임했던 유니언 카바이드는 8천톤이 넘는 유독성 폐기물을 방치한 채 떠났고, 힘 없는 보팔 시민들은 사고 당시부터 2012년까지 (독일의 독극물 폐기업체가 폐기물을 처리하기 시작했던) 이웃과 친구와 가족을 살해한 유독성 폐기물과 함께 살아가야 했습니다.


3.     사고의 원인


철강산업에 의한 1970년대 미국의 스모크 현상

선진국의 엄격해진 유해산업 규제

1970년대 이후, 선진국들은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유해 산업에 대한 법적 규제를 강화했습니다. 이에 따라, 유니언 카바이드와 같은 유해 산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기업들은 엄격해진 안전관리시설과 공해방지시설을 설치하라는 압력을 받게 됩니다. 


다국적 기업의 공해 수출

그 때까지도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본인들의 식민지처럼 여겼기 때문이었을까요? 강화된 환경 규제를 적용하면서 수익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 다국적 기업들은 비교적 규제가 약한 (힘이 없는, 먹고 살기 힘들었던, 환경의 가치에 무지했던..)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로 공장을 이전했습니다. 유니언 카바이드도 당시 미국 정부의 규제를 피해 공장의 해외 이전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참사의 시작

유니언 카바이드사는 인도 마디아프라데시주의 보팔시를 낙점했습니다. 건설 당시 마디아프라데시 주정부는 보팔시 외곽에 공장을 설치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명령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유니언 카바이드는 비용이 더 든다는 이유로 도시 외곽에 공장을 건설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보팔시의 인구 밀집지역에 비료 공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유니언 카바이드는 공장 건설을 위한 초기 투자 비용 중 설계비용마저 줄이기 위해, 검증된 적 없는 설계방식으로 저장탱크를 설계하며 몇 년 뒤 대참사의 복선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살충제 수요가 감소하던 1980년대 초반, 수요 감소에 의해 줄어드는 이익을 비용 절감으로 방어하기 위해 극악무도한 공장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보팔 시에 건설된 유니언 카바이드 공장 - https://www.bhopal.net/what-happened/setting-the-stage-for-tragedy-1969-1984

참사 2년 전..

1982년, 보팔시의 유니언 카바이드 공장 내부 가스 누출 사고로 현지에서 고용한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유니언 카바이드는 이 때 이미, 썩은 떡잎을 보여줍니다. 노조를 만들어 안전한 작업을 요구하던 노동자들은 모두 해고되었고, 비용 절감을 하겠다고 손가락을 튕겨서 노동자의 절반을 추가로 해고했습니다. (타노스??) 안전불감증에 의한 사망사고가 발생했음에도 기존 6개월이었던 안전교육을 15일로 줄여서 사망사고 따위는 개의치 않고 돈을 벌겠다는 태도를 보입니다. 코가 큰 미친놈들은 더 나아가서 지속적으로 새어 나오는 소량의 가스에 의해 수시로 울리는 경보 장치가 시끄럽다고 무음으로 바꿔 버립니다.


1984년 12월 3일,

참사 당일, 메틸이소시안염이 저장되어 있던 탱크 내부의 압력이 과도하게 높아지면서 비극적인 사건이 시작되었습니다.

① 저장탱크 내부 압력의 과도한 증가

② 압력 증가에 의한 저장탱크 밸브의 파열

③ 파열된 밸브로 저장되어 있던 메틸이소시안 가스 누출

④ 무색, 무취의 가스 노출을 알려야 하는 무음의 경보 장치. 그마저도 작동하지 않은 조기 경보체계

⑤ 가스 누출을 대비한 안전 시설의 부재로 가스 계속 누출


결국, 가스 누출 시작 후 2시간 동안 8만 파운드 (약 36톤)의 유독가스 누출되었고, 보팔시의 주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습니다.


4.     무능하고 비인간적인 최악의 대응


https://www.washingtontimes.com/news/2010/aug/31/indias-highest-court-reopens-bhopal-disaster-case/

책임지지 않는 유니언 카바이드

유니언 카바이드는 억울하게 살해당하거나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보팔 주민들에 대한 사죄, 책임 없이 극단적으로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모습을 끝까지 보여줍니다 (아베??)


그들은 설계오류, 안전 시설 부재, 안전 교육 미비, 열악한 생산 환경 등 그들의 모든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운전원의 실수 때문에 일어난 사고”라고 그들의 보고서를 통해 발표합니다. 따라서, 보팔 대참사는 본인들의 잘못이 아니며 단 한 부분의 책임도 없다고 잡아뗍니다. 그리고, 보란듯이 열악한 환경에서 노예처럼 일하던 노동자들을 전부 일방적으로 해고한 것도 모자라서, 8천톤의 유독 물질을 어떠한 조치도 없이 그대로 버려 두고 떠나 버립니다. 


유니언 카바이드는 피해자에 대한 보상 대신 변호사에게 돈을 주는 것을 택했습니다. 1986년, 긴 법적 다툼 후에 인도 정부와 합의한 내용은 “4억 7천만달러로 모든 보상이 완료되며, 유니언 카바이드는 더 이상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였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했다면 3백억 달러를 보상해야 했을 유니언 카바이드가 인도 정부와의 협상에서 완벽하게 승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심지어, 1992년 보팔 법원이 ‘고의로 사람을 죽인’ 혐의로 당시 유니언 카바이드 사의 최고경영자를 구속하려 했으나, 미국이 신병 인도를 거부하면서 법적 책임 마저도 회피합니다.


인도 정부, “아몰랑”

유니언 카바이드가 책임을 회피하는 능력의 만랩을 찍은 반면, 인도 정부는 한없이 무능하고 우유부단했습니다.

https://www.outlookindia.com/newsscroll/336-tonnes-of-hazardous-waste-at-bhopal-gas-tragedy-site-gov

인도 정부는 위에 말씀 드린 유니언 카바이드와의 협상에서 완벽하게 패했을 뿐만 아니라, 협상 과정에서 참사 피해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지도,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503??)

돈이 없어 보팔의 참사 현장 주변을 떠날 수 없는 주민들은 아직도 죽음을 먹고 마시며 살고 있지만, 인도 정부는 부상자들에게 2만5천루피 (약 60만원), 사망자 가족들에게 10만루피 (약 240만원)를 지급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마저도 모든 피해자가 보상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사망자 보상금을 받은 인원은 약 5천명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환경운동가들이 발표한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 3만 3천여명), 


인도 정부는 유해 공장을 건설하려는 외국 자본의 인도 국내 진입을 승인했고, 인구밀집지역에 유해 공장이 건설되는 것을 방관했고, 자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안보 의무를 해태했고, 악덕 기업과의 협상에서 패배했고, 피해를 입은 국민들을 구제하는 데도 실패했습니다.


5.     참사 이후..


보팔 대참사 이후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저개발 국가에서 선진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벌이는 행태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선진국들이 안전 및 환경에 대해 더욱 강하게 규제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다국적 기업들이 그들의 공장을 규제가 없거나 미약한 저개발 국가로 이전하는 강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힘이 없고, 먹고 살기 힘들어서 어떻게든 경제를 발전시켜야 하는, 그래서 상대적으로 안전과 환경의 가치를 무시할 수밖에 없는 개발도상국의 국민들은 보팔과 유사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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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많은 사고사례를 잘 정리해서 전달드릴 생각이었는데, “보팔 대참사”가 던지는 주제가 묵직해서 한 가지 사례를 보다 자세하게 전달 드렸습니다. 제 글을 읽는 데 쓰신 시간이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었기를 바라 봅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고 유익한 내용으로 다시 인사 드리겠습니다.

좋은 한 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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