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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을 Oct 21. 2021

양치시키는 게 뭐 어때서...

역지사지를 배우다

“또 양치를 안 하고 자는군! 양치 안 하면 치아 썩어. 치아가 얼마나 중요한데. 치아에 충치균이 나 잡아 봐라 하면서 치아 사이사이로 뛰어다닐 거야. 충치균 본 적 있어? 얼마나 징그러운데. 막 꿈틀꿈틀 거려. 꿈-틀-꾸움-틀”


동생이 양치도 안 하고 자려한다. 또! 나는 동생 방에 노크를 하고 양치의 중요성과 충치균의 무서움을 설명한다. 동생은 소리만 냅다 지른다. 오빠는 또 양치시킨다면서.


“알아서 할 거야!” 


알아서 하는지 지켜보았다. 한 시간이 지나도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 즈음이면 양치를 하고도 남았어야 되는데. 지금은 밤 12시다. 얼른 양치하고 자야 된다. 이러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아침이 돼버린다.     


나는 방문에 대고 말했다. 

“얼른 양치해야지!” 


내 목소리는 전보다 격양돼있었다. 방 안에서는 또 “알아서 할 게!”만 들린다. 방문은 역시나 열리지 않는다. 이제는 나도 지쳤다. 양치를 시킬 여력이 없다. 그래서 그냥 둔다. 알아서 하겠지. 나이도 들어가니까. 


이 글의 문맥은 알려준다. 동생이 양치를 안 했을 거라고. 역시나. 다음날, 어제 양치를 하고 잤는지 물어보니, 안 했단다. 


“안 했어. 어떻게 하지? 깜빡 잊고 잠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해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  



문제는 이런 일이 빈번하다는 것. 매번 나는 양치를 시키려 하고 동생은 안 하려 한다. 그러다 보면 또 아침이 돼있다. 내가 이른 밤에 시키는 것도 아니다. 저녁 9시 정도에나 해두면 좋겠다고 해도, 동생은 그것마저 귀찮다며 미루는데 어찌하겠는가. 


그런데이야기는 여기서부터다.


동생이 치과에 다녀오고. 썩은 치아들 사이에서 양치의 소중함을 찾았는지, 밥 먹고 나면 바로 양치한다. 하루에 세 번은 기본이다. 다섯 번도 한다. 이제는 내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한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성실했어, 내 동생이?   


그런데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다.


이제는 동생이 나보고 양치 좀 얼른 하라고 시킨다. 내가 양치를 안 하고 자는 것도 아니다. 저녁 기준으로 8시 정도에 한다. 내겐 그게 익숙해서 그렇다. 그런데 동생은 –익히 알 듯이, 충치의 무서움을 깨닫고- 밥 먹고 나면 곧장 양치를 하더니, 나까지 하라고 시키는 것이다.  


“얼른 오빠도 양치해! 그러다 이빨 다 썩어. 양치는 밥 먹고 30분 이내로 하래”   


이건 내가 해오던 말에서 2% 정도 부족했을 뿐 거의 같다고 봐도 무방했다. 문제는 이것도 하루 이틀이지 며칠 몇 주가 지속되니 나도 짜증이 나는 것이었다. 오빠는 어른이라고. 양치를 안 하는 것도 아니고, 곧 하겠다는데도, 매번 얼른 양치하라고 그러다 이빨 썩는다 하는데, 나로서는 짜증이 안 날 수 없었다.  

 

“왜 오빠한테 그렇게 양치를 시켜? 오빠가 다 알아서 하는데”  


그랬더니 동생이 응수했다.  


“오빠도 전에 나한테 양치시켰잖아! 그래서 나도 시키는 거야!” 


나는 조금 의아했다. 내가 동생에게 양치를 시키는 것과, 동생이 내게 양치를 시키는 것이 같을까? 아니다. 분명 아니다. 나는 동생의 치아 건강을 위해 양치를 시켰던 거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또 이상하다. 동생도 내 치아 건강을 생각해서 양치시킨다는 건데, 그게 안 될 거라도 있나?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내가 지금껏 양치를 시켰던 게 동생 입장에서는 많이 스트레스 받았겠구나. 양치하라고 그렇게 문을 두들겼으니 짜증 많이 났겠구나. 내가 조금만 더 우회적으로 양치를 시켰다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얼른 양치해야지, 하며 선잠을 깨웠으니 많이 피곤했겠구나. 나는 역지사지의 기분을 이날 톡톡히 느꼈다. 


그래도, 나중엔 알아주겠지? 내가 날마다 양치시킨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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