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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을 Oct 18. 2021

우산을 들고 갔는데, 어라?

*동생이 중학생 때의 이야기입니다




아침. 날씨가 꾸무룩하다. 곧 비가 내릴 것 같다.   


동생이 등교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동생에게 말했다. “비 올 것 같은데 우산 들고 가!” 그런데 동생은 우산을 안 들고 간단다. “날씨는 이래도 비 온단 말 없었어. 그냥 학교 갈래”   


오후가 되니 빗방울이 쏟아졌다.  


비 오는 날이면 나는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린다. 나는 학교 앞에 우산 들고 오는 부모님들이 그렇게 부럽지 않을 수 없었다. 비 오는 날이면 꼭 그런 부모님들이 계셨으니까. 그 아이들 기분도 부러웠다. 우산이 없어 집으로 뛰어가려는 찰나에, 어머니가 우산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 모습. 나는 언제나 비를 맞고 왔다. 내 기억 속엔 우산을 들고 기다리는 ‘누군가’의 자취가 없었다.  


나는 학교에 있는 동생이 걱정됐다.  


“비 맞으면 머리카락 빠진대. 나 대머리 되기 싫어.”  


동생은 비만 오면 말했다. 산성비 맞으면 대머리 된다고 어디선가 들었나 보다. 이게 바로 주입식 교육의 폐해라 나는 생각했다. 일단은, 교육의 문제점은 뒤로하고 나는 동생을 데리러 가기로 했다. 일하고 와서 피곤하긴 했지만, 그래도 비 맞고 올 동생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어머니께 동생 학교 담임 선생님께 문자를 보내 달라고 부탁드렸다.   


‘오빠가 우산 들고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빗줄기가 두터웠다. 태풍이 분다고 했던가. 역시 내가 우산을 들고 가는 게 옳았다. 동생이 학교부터 비를 맞고 오기엔 영 아니었다.   


학교 정문에 가서. 학생들 틈에서 동생을 기다렸다. 학생들이 쏟아져 나와 러시아워가 됐다가 다시 잠잠해졌다. 그러다 또 러시아워가 됐다가 잠잠해졌다. 파도가 치듯이.    


그러다 저 멀리서 동생이 뛰어오는 게 보였다.    


“오빵!”  


동생의 목소리는 정말 오‘빵’이었다. 환하게 웃으며 뛰어오는 동생. 나는 우산을 들고 기다린 보람을 느꼈다. 역시, 이래야지. 언제 우산 들고 기다려보겠어.   


그런데 곧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동생 손에는 우... 우... 우산이 있었다. 핑크색. 작은 우산이. 손... 손에... 가지런히 접혀 있었다. 나는 허탈한 기분에 내가 걸어오며 지났던 비바람들을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걸어왔는데. 10분 거리라도, 비바람이 몰아치면 30분처럼 느껴지는데. 내 바지 밑단 보면 모조리 물에 얼룩졌는데. 내가 걸어오면서 밟은 웅덩이는 대체 몇 개였는지. 그 웅덩이 밟다가 내 발가락이 간지러워, 하고 양말 어떻게 하지, 몇 번이나 바라봤는데.  



나는 동생 주려고 들고 온 우산을 멀뚱히 쳐다봤다. 아직 채 펴지도 못한 우산은, 오늘은 더 이상 쓸 일이 없을 것 같다. 아, 괜히 들고 온 것일까. 고생만 한 것일까. 아니다. 그건 아니었다. 이 우산은 분명 내 관심의 표증이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걸어왔는지, 증명하는 증표다.   



그리고 나는 그날 깨달았다. 동생은 중학생이다. 다 컸다고 봐도 됐다. 물론 아직도 학생이지만. 그래도, 비 오는 날을 대비해 학교에 우산은 비치해둘 만한 나이다. 내가 그렇게 챙길 필요는 없었다. 인생은 때때로 태풍의 눈 속을 거닐 때처럼 고단할 테니. 내가 그때마다 도와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묵묵히 영화 편지와, 이런저런 편지를 쓴다. 동생에게 태풍을 이기고 나아가는 법. 태풍에 무릎 꿇지 않는 법. 불시에 들이닥친 태풍을 막아내는 법 등을 알려주고 싶어서. 나는 그렇게라도 수많은 ‘우산’을 준비해두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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