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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을 Oct 12. 2021

점수, 공부한 만큼 안 나와도 괜찮아

동생이 기분이 안 좋을까?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학교 다녀와서는 내내 방에만 있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잠깐 방에서 나왔을 때 보니, 얼굴이 굳어있다.   


아침에 학교에서 시험을 본다고 했는데. 점수가 마음먹은 만큼 안 나온 듯하다. 아침도 제대로 못 먹고 등교했는데. 어제저녁 2시까지 방 불이 꺼지지 않았던데. 그만큼 노력했는데도 기대만큼 점수가 안 나와 실망한 듯하다.  


동생이 저녁에 밥을 먹으러 거실에 나왔을 때, 나는 물어봤다.  


“시험 잘 못 봤어? 무슨 일 있는 거야?”  


역시, 학교에서 시험을 잘 못 봤다 한다. 문제 몇 개를 아쉽게 틀리는 바람에 점수가 많이 깎였다고 한다. 선생님은 이번에 문제를 쉽게 낸다고 하셨는데, 너무 어렵게 냈다며 선생님은 거짓말쟁이라고 한다. 


세상 모든 일이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진 않는데. 동생이 점수에 너무 연연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공부했으니 된 거다. 노력한 게 어디 가지는 않는다. 지금 그것들이 점수로 환산되지 않았다 해도, 배운 것들이 없어지지는 않으니, 나쁠 건 없다.’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 말이 동생 마음에 와닿았을진 몰랐다. 어느 때보다 시험 점수에 민감할 나이에, 나의 이러한 격려가 되레 형식적인 위로처럼 들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학교 시험은 어떤 구분을 만들었다. 시험의 ‘가치’는 점수가 결정하고, 점수는 친구들 사이의 구분을 만들었다. 누구는 시험 잘 봤대, 누구는 시험 나보다 몇 점 더 잘 나왔대. 그런 말을 들으면 친구 사이라도 샘이 나고 불편해지기 십상이다. 학교라는 공간은 어떠한 면에서 경쟁을 부추기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열심히’ 공부했다는 건, 점수의 높이에 따라 결정되기도 했다. 100점을 받으면 이번에 열심히 공부했구나, 칭찬을 받는다. 90점을 받으면 조금 실수했구나, 아쉽다 해도 칭찬을 받는다. 70점이나 50점 혹은 그 이하를 받으면 공부를 열심히 안 한다는 말을 쉽게 듣는다.  


동생은 집에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 100점은 못 맞아 왔을지라도, 나는 그런 동생이 보기 좋다. 공부하려고 열을 다하는 모습. 모든 과목은 아닐지라도 몇 과목만큼은 좋은 점수받으려 애쓰는 모습. 그런 모습을 보면 동생이 대견하다. 피곤하면 눈에다 치약을 바른다는 건, 나를 놀라게 했지만, 그만큼 열심히 공부한다는 것에 감동도 받았다. 


나는 그런 네 모습이 보기 좋다누군가는 공부한다 해놓고 게임방에 가거나문제집은 푸는 척만 하다가 공장초기화 상태로 되파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너는 잠도 제대로 못 취해가며 문제집을 풀고 외워지지 않는 부분은 몇 번이고 공부하니나는 그런 너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누구나 다 알아줄 수는 없지만. 곁에서 보고 있는 나만큼은 분명히 안다. 주위에서 점수가 몇 점 나왔다, 이번에는 열심히 안 했다, 그리 말해도 나는 안다. 이전보다 못하지 않았다고, 문제 푸느라 고민하고, 지우개 가루에 더러워진 책상을 닦고 또 닦고, 이번 시험은 몇 점이 나올지 걱정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시험 기간만 되면 소화가 안 돼 아침도 제대로 못 먹고 가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다 안다. 점수가 몇 점이 나오든 너는 노력했다는 것을.  


미래에 지금보다 기술이 더 발달하면, 지금과는 다른 시험을 치르면 좋겠다. 시험날. 시험기간 공부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와 고민, 그리고 제대로 못 먹어 홀쭉해진 마음 그러한 것들을 기계로 재었으면 좋겠다. 시험 점수가 아니라, 한 영혼이 그동안 얼마만큼 노력했는지를 ‘점수’로 측정하면 좋겠다. 그게 ‘점수’가 되고, 학생들의 ‘자랑거리’가 되며, 학교‘생활’의 수우미양가, 1등급, 2등급 3등급이 됐으면 좋겠다. 어떤 학생이나 노력한 만큼 점수를 받도록. 아침에 잘못 먹은 음식 탓에 노력한 시간을 헛되이 놓치는 일이 없도록. 

  

동생은 시험 점수로 고민하고 있지만, 나는 안다. 열심히 공부했으니 실망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는 시험 잘 봐서 꼭 높은 점수받겠다 다짐해서 그런 것임을.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면 점수에도 연연하지 않았을 것이고, 점수가 몇 점 낮게 나왔다 해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니. 


집으로 들어오는 동생의 굽은 어깨는

오늘도 내 마음을 

아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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