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원짜리 명품보다도
나는 스물이 넘을 때까지 제대로 된 지갑을 갖고 있지 않았다. 지갑에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지갑이라는 존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굳이 지갑을 들고 다녀야 되나, 번거로운데. 그 생각뿐이었다.
그래도 스물을 한참 넘겼으니 지갑이 필요할 때도 됐다. 모임을 나가 사람을 만나고, 누군가와 밥을 먹고, 놀러 다닐 때 지갑이 없으니 나의 자태가 영 말이 아니었다.
어쩌다 나는 흘려보내듯 말했다.
“아, 지갑이 필요하네. 모임 나갔는데 다들 지갑이 있던데”
동생은 내 말을 들은 듯했다. 동생은 초등학교 5학년인 어느 날, 마트에서 지갑을 사 왔다. ‘다있소’라는 곳이었다.
“오빠, 지갑 이거 써. 내가 사 왔어.”
찬찬히 보니 택에 3000원이라고 쓰여있었다. 이 지갑을 보고, 나는 쓸지 말지를 고민했다. 먼저, 지갑이 너무 가벼워 보이는 게 흠이었다. 물론, ‘무게’가 가벼웠다는 말이다. 더욱이 지폐는 펴서 넣지 못했다. 반으로 접어서 넣어야만 됐다. 전체적으로 이미지가 초등학생이 쓸 만한 지갑이었다.
그래도 그냥 썼다. 좋은 지갑이나 비싼 지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으니, 3000원짜리 지갑도 딱히 불편하진 않았다. 오래 쓰다 보니 익숙해졌고, 어느새 사용한 지 2년 6개월을 넘겼다. 지갑은 시간을 먹었는지 낡았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이 지갑을 할퀴고 갔는지, 지갑의 실밥은 풀리고 색은 누레져 있었다.
그런데 이때. 마침 블랙프라이데이 행사가 시작됐다. 미국 아마존에서 다양한 상품을 저렴하게 팔고 있었다. 보통 국내 분들은 ‘블프’ 때 어마어마한 양의 직구 상품을 지른다고 한다. 전자기기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나는 무슨 상품이 있나 구경해보기로 했다. 한몇 분 봤을까. 지갑을 보았다. 보는 순간 솔직히 감탄했다. 지갑이 멋있었다. 지갑이 ‘멋’ 있다는 말은 내 생애 처음 쓰는 말이었다. 그 지갑은 명품이었다. 천연 가죽을 사용한 데다, 가볍고 얇아서 들고 다니기도 편하다고 했다. 그런데. 가격에서 한 번 더 놀랐다. 80프로 할인해서 5만 원이라니. 그 ‘멋’ 진 지갑이. 고작 50000원? 500000원도 아니고. 공 하나 빼고 50000원?
나는 책상에 있는 지갑을 보았다. 다 닳아있었다. 이제 지갑을 바꿀 때가 된 것 같았다.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내 마음에 드는 지갑을 살까. 나는 그리 생각하면서, 직구를 위해 로그인을 하...
려다 그만두었다. 고민이 됐다. 과연 이 명품 지갑이 내 지갑보다 좋을까? 정말로?
이 지갑은 동생이 준 지갑이다. 5학년이 돈이 어디 있다고, 붕어빵 9개 먹을 수 있는 돈을 내게 투자한 것이다. 오빠 지갑 쓰라고. 과연 어떤 ‘명품’이 이 지갑보다 값지다 할 수 있을까. 오랜 시간 써서 정이 드는 것도 있다. 명품이 이 지갑에 비해 의미 있다면 얼마나 의미 있을까?
비싼 게 좋은 건 아니었다. 아무리 비싼 물건도 인간의 정을 이길 수는 없었다. 인간의 관심과 마음이 들어간 물건은 명품보다 훨씬 비쌌으며, 아니, 애초에 값으로 매길 수조차 없었다.
나는 쓰던 지갑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그러나, 나의 어머니는 나의 마음을 몰랐다. 아쉽게도 전혀. 어머니는 내 지갑의 상태가 너무 처량해 보였는지, 마트에 가셔서 지갑을 하나 사 오셨다. 그리고 이어진 어머니의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울렸다.
“네가 쓰고 있는 지갑이 너무 낡았더라”
그래도
나는
나의 보물 박스에
그 지갑을
담아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