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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엽 Feb 07. 2023

우린 죽고 낯선 누군가가 되었어



「우린 죽고 낯선 누군가가 되었어」   

  

겨울밤에 놓고 와야 했던 것들인데 우린 그걸 잔뜩 끌어안고 있잖아. 끊어진 목걸이를 긁어모으다가 먼지에 머리카락, 지난여름 잃어버린 머리끈까지. 그것도 모자라 말라붙은 귤껍질을 보며 아쉬워하고 예쁜 이름까지 붙여 주려는 거야.    

 

먼지 1. 입버릇처럼 괜찮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어. 가끔은 너무 괜찮지 않은 일도 있는 법이라고. 그러니까 그 사람이 사라졌을 때, 그때 그 사람이 죽어버렸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예를 들면 얼어 버린 호수 밑으로…. 아니다, 차라리 우리가 세상에서 지워졌다고 생각하자. 아픔을 이해해 줄 사람이 멸종했다고 말이야. 어쩌면 우린 이름도 얼굴도 없는 이방인이 될 수 있을 거야. 언젠가 소극장에서 마주친 배우의 희멀건 얼굴처럼 생존의 흔적만 간신히 남아있는 아름다운 타인이 되는 거야.     


머리끈 1. 아무튼, 더는 기다리지도 말고 죽어버렸구나, 다신 만날 수 없구나 하란 말이야. 그래도 견딜 수 없을 땐 마음껏 울다가 울기 시작한 이유를 잊을 무렵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며 잊어주자. 그래도 안 되면 연기라도 배워볼까.     


먼지 2. 마음이 다시 타오르지 않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 부디 자책하지 말아. 죽어버려서 더는 몸에 온기가 들지 않는 거뿐이야. 아! 봄의 대지를 덮을 녹음은 가을에 잃어버린 사랑의 증거가 아니야. 벚꽃도 그렇고. 말 안 해도 잘 알고 있겠지만.     


머리카락 1. 뻔한 이야기인데 많이 아프네. 폐 속에 알알이 얼음 조각이 들어차서 말을 꺼낼 때마다 몸이 차게 식어. 볕은 이렇게 따뜻한데 되게 이상하다. 우리 어쩌면 사람이 아니라 삶을 잃은 걸까. 이렇게 멍하니 앉아서 볕이나 쬐고 있어도 되는 걸까.     


머리카락 2.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 이리도 마음이 아픈 사유는 우리가 어딘가에서 죽고 다른 누가 되었기 때문이겠지. 잊고 다시 살아가고 또 죽고. 그리 생각하니 지옥의 고문 기계에 올라탄 기분이다. 그래도 너무 걱정은 말아. 눈물 대신 퍼석한 먼지만 흐르는 걸 보니 곧 괜찮을 거야. 우리 애정도 증오도 없는 짙은 밤을 꿈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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