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단상
빈칸
타인의 온기로 마음이 타오르는 순간은 형용할 수 없이 황홀하다. 까닭에 진득한 수치심만 남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어김없이 애착하고 마는 것이다.
지난여름의 자취처럼 타성에 젖은 감탄과 뻔한 이야기로 범벅된 시간. 내일까진 이걸 영원이나 애정이라 부르기로 하자. 꿈을 좇는 눈이 반짝이는지 물에 반사되는 후미등이 발광하는지 알 길 없는 도시의 밤을 함께 토하자.
너는 사랑이란 게 고급 원피스에 달린 플라스틱 단추처럼 처량한 것이라 했다. 난 그 말이 어려워서 한참 근심하다가 지퍼 하나면 족할 것에 단추를 붙여 놓으니 더 궁색한 게 아닌가 했다. 물으려니 넌 이미 강 건너였다.
아아, 우린 또다시 독백한다. 언뜻 상대를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도 우연일 뿐이다.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에 대화한다는 착각을 하며, 잠자코 있는 것으로 서로의 상실을 이해하는 거다. 그러니 아무리 노력해도 서로를 알 수 없다.
내일은 씩씩하게 태양을 향해 걸어가기로 하자. 행여 기름진 머리카락이나 푹 패인 눈두덩을 보며 서로 가여워하는 일 없도록 하자. 타버리든 태워버리든 걱정하지 말고.
이제 와 하는 말인데 이따금 네 적당히 구겨진 마음을 들여다보며 안도하기도 했다. 네 말대로 모두 고독하다고 믿는 배덕함 탓인지 모른다. 나 이러고도 너의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동시에 지난밤 볼을 타고 흐른 녹물과 술 냄새 풍기는 목구멍 너머 그을음이 될까. 아무렴 어때. 타고 남은 잿더미에 붙일 이름은 없기에.
네가 태양에 삼켜진다. 사라져. 흩어지듯 사라지는 거야. 당장은 콩알만 해진 너를 기억해야겠다. 그다음엔 말간 미소를 기억하고 거기에 아무도 없다는 걸 기억해야지. 한참 손을 흔들다가 그은 살갗이 쓰리고 뜨겁기를 반복하기에 난 결국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