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너무 사랑했네

'적당히' 가장 어렵고 힘든 그 말

by 로지

글을 쓰기 전에는 주로 커피를 내린다. 의식 같이 거창한 것은 아니다. 이 시간을 시작으로 하루 종일 풀가동해야 하는 머리를 잠시 멍하게 두는 것이다. 커피물이 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것도 삶의 진리를 알려주는구나 싶다.


photo-1442512595331-e89e73853f31.jfif

Photo by Karl Fredrickson on Unsplash


곡식은 키질을 해서 불순물(겨)을 날린다. 가능한 불순물이 없는 좋은 알곡을 만나려면 키질을 열심히 해야 한다. 그렇게 남는 알곡이 우리의 먹거리가 된다. 여기에 기인해서 우리는 불순물을 날리고 진짜만 남기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 강한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을 올곧고 단단한 낟알이 영글게 하기 위해 쉼 없이 담금질을 하는 것이다.


반면 흙탕물은 가만히 두어야 한다. 그래야 불순물(흙)이 가라앉아 다시 맑고 투명해져서 마실 수 있는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명상이나 요가는 탁해진 마음속의 불순물을 가라앉혀 투명한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간은 비슷한 맥락으로 필요한 시간인 것이다.


커피를 분쇄기에 갈아 뜨거운 물을 붓는다. 남은 알곡을 먹는 것도 아니고 불순물을 가라앉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흘러가게 둘 뿐이지만 속해있는 모든 공간이 그 향에 젖는다. 스쳐 지나간 물에 색과 맛이 배여 새롭게 태어나게도 한다.


살면서 이제야 깨달은 진리 중 하나가 삶에 정답은 없다는 거다. 당연히 하나만 지향해야 하는 삶도 없다. 경우에 따라 열심히 움직여야 할 수도 있고, 팔이 아프게 키질을 해서 불순물을 날려야만 하는 순간도 있다. 때로는 가만히 스스로 정화하기를 기다려주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키질일까? 기다림일까? 무엇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고 살지는 꾸준히 지켜보고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니체의 삶>을 읽고 있는 중이다. 내가 만난 니체는 삶의 무게를 일찍부터 느낀 사람이다. 그럼에도 무게에 짓눌리지 만은 않는다. 자신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충분히 아끼고 사랑한다. 커피를 내리다 말고 그가 자신을 조금만 덜 사랑했어도 조금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은 모두 그가 성직자가 되리라 생각했다. 당연히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리라 믿었다. 자신도 처음에는 그렇게 믿었지만 이어지는 학문의 길에서 그는 종교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결국 모두가 원한다고 생각하던 그 길에서 벗어나 주위의 압박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나아간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해야 행복할 수 있는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


니체의 신체에 대한 설명을 읽다 보면 '선천적으로 약한 몸'이라는 서술은 이 정도 쯤되야 쓰는 거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된다. 학생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가 수업을 이어가려고 애쓰는 모습을 지켜보기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두꺼운 안경을 쓰고도 코가 거의 닿을 듯 노트를 가까이 쳐다보았다. 중간중간 말을 멈추고 힘겨운 듯 단어들을 하나씩 천천히 내뱉기도 했다.


니체는 어린 시절부터 구토와 극심한 두통을 자주 겪어왔고, 몸이 안 좋아지면 일주일 내내 어두 컴컴한 방에 누워서만 지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눈이 너무 약해 햇볕마저 자극적이라 늘 뿌연 안경을 쓰거나 모자로 햇볕을 가려야 했다. 종종 나빠진 몸으로 힘겨워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그런 그가 1870년 프랑스와 프로이센 간의 전쟁이 벌어지자 '조국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전쟁에 참여하기를 마음먹는다. 이는 니체를 잘 모르는 나도 의아하게 생각할 정도다. 누가 봐도 일반적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약한 몸을 가진 사람이다. 언제 몸이 다시 안 좋아질지도 알 수 없지 않은가. 위생병이라고는 하지만 코지마(바그너의 부인)도 말했듯이 '군대 입장에서는 풋내기 군인 한 명이 오는 것보다 담배 1백 갑을 보내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떻게 봐도 그의 몸은 전쟁을 수행하기 적합하지 않아 보이지만 그는 결심을 굽히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니체가 생각하는 삶의 무게, 스스로 인정하는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 달랐음이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무언가를 하지 않기 위한 핑계로 약한 신체를 들이대지 않는다. 삶과 생각을 관통하는 하나의 생각을 가지고자 했던 흔적들이 이런 부분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원래 내가 힘든 게 가장 힘들고 내가 아픈 게 가장 아프다. 그렇기에 아픔과 힘듦에 관해서 이기적이 되는 모습을 비난할 자격도 웬만해선 가지기 힘들다. 흔히들 내가 아파봐야 아픈 사람들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니체 정도였으면 앞서 전쟁에서 당한 부상도 있었으니 충분히 다른 방법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도 있었다.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자신을 너무 몰랐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의 이상을 실행하고자 하는 의지만큼은 높이 평가해야 할 것 같다.


하나를 보고 열을 짐작하는 우를 범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주워들은 니체의 고달픈 삶의 일부는 짙은 자기애로 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를 너무 사랑하니까 자신이 원하는, 생각하는 삶을 살아내고 싶었을 거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이 현실이 되지 않아 마음이 병들고 숱한 밤을 고뇌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삶과 생각을 관통하는 하나 된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니체의 고민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Photo by Sam Warren on Unsplash


어느 시절 꿈을 꾸듯 이상만 좇던 나를 만나고야 만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시절 나에게, 지금 만난 니체에게 전하고 싶다. 매번 키질을 하더라도 가끔은 가만히 놓아두어도 괜찮아. 너를 사랑하는 방식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야. 흘려보낸 것들이 더 많은 향기를 실어 나르고 세상을 변하게 할 수도 있어. 잠시 주위를 돌아봐. 하늘은 맑고 어디서건 아름다운 자신만의 꽃을 발견할 수 있어. 지금도 너는 충분히 아름다워...





keyword
이전 19화안녕, 만나서 반가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