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위 친절하지 못한 말투라니
일전에도 24시 관찰 프로그램의 촬영 대상이 되었으면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프라이버시가 지켜진다는 보장만 있다면 카메라를 설치해 우리가 사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찍어 보기 좋게 편집해서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 한 번쯤은 다들 해 봤으리라 생각된다. 리얼 육아 프로그램처럼 찍어보면 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할까? 나는 평소에 어떤 모습일까?
요즘 아이의 유튜브를 찍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목소리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니 가능하면 편집의 힘으로 삭제하지만, 퉁명스러운 말투와 명령조의 목소리가 참으로 거슬린다.
"당신도 애들한테는 참 상냥한 목소리가 아니야."
남편의 적나라한 피드백이 이어지니 생각이 깊어진다.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다소 지치기는 했으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들리는 목소리는 충분히 짜증스럽고 퉁명스러우며 아이들을 다그치고자 하는 의지를 간신히 누른 듯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 '평소 아이들을 대하는 내 말투가 이렇단 말이지?'
상담사로 꽤나 긴 시간 일해왔다. 목소리로 밥을 벌어먹고살았으니 웬만해서는 상담 중에 퉁명스러운 말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짜증이 나도 목소리는 친절하다. 그게 나의 가장 큰 강점이었다. 이 꽉 깨물고 상냥하게.
어째서 집에서의 모습은 이렇게도 다른 걸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을 너무 막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어보니 신랑한테 말투는 이렇지 않다는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이 '엄마는 아빠만 좋아해.'라고 하는 걸까?
<니체의 삶>에 나오는 니체는 시, 논문, 책, 강연의 원고 등의 모든 글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바그너와 그의 아내 앞에서 낭독한다. 그리고 그들과 대화한다. 자신의 글을 남들 앞에서 읽는 것은 그들을 대하는 말투와 많이 다를까?
Photo by Gianandrea Villa on Unsplash
어떤 글이건 누군가 앞에서 읽어보는 행위는 색다른 경험임은 분명하다. 어제 한 달 서평팀의 라이브가 있는 날이었다. 급작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라이브를 이끈 이들의 열정과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흔적들이 보였다. 뒤이어 지난주 라이브도 떠올랐다.
서평 방에서는 세 번째 라이브였지만, 처음으로 책을 리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녹화되지 않는 라이브의 특성상 내가 뭐라고 이야기했는지, 어떤 표정과 말투였는지 알 수 없어 궁금했다. 남편의 도움으로 라이브를 따로 녹화해 두고 보고 있다. 나의 웃음이 이렇게 어색하구나, 억양에 아직도 사투리가 많이 묻어나는구나. 등등 많은 생각이 스친다.
같이 보고 있던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 평소 말투랑 라이브 할 때 말투랑 정말 달라?"
"응!"
"어느 쪽이 더 좋아?"
"음..... 그냥 지금 말하는 말투가 더 좋아."
"엄마가 평소에 말하는 말투가 더 좋아? 엄마가 보기엔 라이브 할 때의 목소리나 말투가 더 좋은 것 같은데?"
"저건..... 나쁘진 않은데, 좋지도 않아."
"엄마가 평소에 친절한 말투는 아니지 않아?"
"그건 그렇지. 평소에 엄마가 친절하지는 않지. 뭐. 그래도 지금이 더 좋아."
시크하게 답하는 말에는 가식이 없다. 담백하게 엄마 말투가 친절하지 않다고 말한다. 정말 평소에 나는 친절하지 않구나.
물론 듣는 대상에 따라 목소리와 말투는 변할 수 있다. 나의 기분에 따라서도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너무도 소중한 아이들에게 상처 주는 말투와 목소리로 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슬며시 걱정이 된다.
작가 김새해 씨는 본인의 목소리와 말투를 바꾸기 위해 오랫동안 아나운서 이금희 씨 따라 하기를 연습했다고 했다. 나는 어떤 목소리와 어떤 말투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은가?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나의 목소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떤 목소리와 말투를 본보기로 삼을지. 어떻게 연습을 해야 할지. 한 번쯤 생각해 볼 부분이 아닐까.
문득 니체의 목소리는 어땠을까? 상상한다. 강연의 원고를 읽는 그의 목소리는 힘차고 우렁찼을까? 조금은 가냘펐을까? 고뇌가 깊었던 만큼 말의 속도는 빠르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돈키호테적 충동이 있었다는 걸 보면 기분의 고조가 목소리에서도 느껴질 정도는 아녔을까 싶기도 하다.
목소리와 말투는 그 사람의 많은 부분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법이다. 조금은 가다듬어 나의 의도가 오해받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은 조금 더 상냥한 목소리의 엄마가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