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공부를 하거라. 나는 책을 보련다.
큰 아이가 어느 날 두발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했다. 며칠 전 남편과 두발 자전거는 언제쯤 타는 거냐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본인이 타고싶다고 할 때'라고 결론 내린 걸 들은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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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보조바퀴를 떼어내고 공원으로 나갔다. 뒤에서 잡아주는 남편은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며 힘듦은 호소했지만 손목이 안 좋은 내가 어설프게 거들었다 아예 손을 못쓸까봐 말로만 격려하기를 몇십분. 아이가 혼자 타보겠다고 한다.
'괜찮을까?'
보호장구를 하고 타는거라곤 하지만 내심 안절부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아마 아이가 하나였으면 전전긍긍
꽁무니를 따라다녔을지도 모른다.
퀵보드를 타도 '엄마랑 같이'를 외치는 둘째와 유모차에 더 이상 앉아있지 않겠다며 출격하신 막내를 두고 눈으로도 첫째를 쫒을 수 없었다. 곁에 있을 아빠를 그냥 믿는거다. 스타트가 힘드니 비탈길 위쪽에서 잡아주고 시작해서 내리막을 지나 혼자타기를 한다. 타는 요령을 익히더니 스타트도 혼자 해보겠다고 한다. 한 발로 서서 다른 발은 패달에 올리고 힘껏 밀어 중심을 잡는다. 말이 쉽지 처음부터 잘 되진 않는다. 의욕이 앞선 아이는 절대 도와주지 말라고 한다. 미안하다. 도와달라고 했어도 못해줬을지 모른다. 덕분에 아이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잔소리를 듣지 않고 스스로 타는 법을 익혔다. 짐작컨데 성취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으리라.
아이가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를 떠올려보라. 몇 번이고 넘어지는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서 아이는 저 혼자 자전거를 탈 수 있다. 이 때 부모가 뒤에 서서 "자전거 패달을 힘껏 밟으라고 했잖아!" "땅만 보면 어떡해! 앞을 봐야지, 앞을!" 하고 소리쳐도 아이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부모는 곧 쓰러질 것 같아 보이는 위태위태한 자전거를 탄 아이가 걱정스러워하는 말이겠지만 아이 귀에는 호통이자 잔소리로 들릴 뿐이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페달을 굴리는 아이의 모습이 부모의 눈에도 곱게 보일 리 없다. 부모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아이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는 슬그머니 자전거에서 내려버린다. 제아무리 노력해도 부모가 잘못된 점만 지적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메타인지 학습법> p.89
큰 아이는 공작에 능하다. 자르고 붙이고 만들고 그리고 꾸미기에 달인이다. 아이가 처음부터 이렇게 다 잘했던 건 당연히 아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순간 중 하나가 처음 아이가 유아용 가위를 들고 종이를 자를 때이다. 어설프게 가위를 손에 끼고 한 손에 종이를 들고 자르기를 시도한다. 각도도 안 맞고 유아용 가위라 깔끔하게 자르기도 힘들다. 종이를 자르는 것인지 뜯는 것인지 구분도 안가는 실력에 요령을 어떻게 가르쳐야하나 고민을 하던 중이다. 둘째가 울면 고민의 순간은 끝난다. '알아서 하겠지' 하는 말도 안 되는 자기 위안을 삼고 상황으로부터 눈을 감는다. 완성된 작품(?)을 가져오면 그저 크게 칭찬을 해준다. "정말 멋지네!!!!"
이런 순간들이 쌓이고 아이가 8살이 되었다. 이제 큰 아이는 동생들 만들기북에서 제법 정교한 장난감들을 오려 만들기를 해준다. 물론 아직 유아용 가위를 사용하지만 어른용 가위 못지 않게 깔끔하게 잘라낼 줄도 안다. 때에 따라 딱풀, 목공용 풀, 테이프를 이용해 완성도를 높인다. 솔직히 내가 만들어도 아이의 그것보다 잘 만들거라고 자신하기가 어렵다.
성격상 간섭을 하려고 들었으면 아이가 주눅이 든 걸 봐도 멈추지 못했을 거다. 하나부터 열까지 미숙하기 짝이 없는 아이의 모든 것이 간섭의 대상이 될테니 말이다. 그런 성격을 바꾸진 못했지만 다행히 아이가 셋이라 잔소리를 덜하게 된다. 잔소리할 여유가 안 된다.
많은 전문가들이 아이를 믿어주고 기다리라고 한다.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조금만 도와주면 더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요령을 쉽게 익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다. 참다못해 대신받아들고 해주고야 만다. 아이는 자신의 실력과 엄마의 실력을 그 자리에서 비교당한다. 절대 이길 수 없는 게임이지 않는가!
언젠가도 말했지만 오지랖도 넓고 육아 의욕도 높은 나에게 쉽게 주눅드는 성격을 가진 큰 아이는 정말 까다로운 대상이다. 조금만 간섭해도 포기해버리고 말았을 케이스다. 다행히 환경이 큰 아이에게 집중할 수 없도록 설정되어 있어 큰 아이는 더욱 어른스럽게 자라버렸다.
자의 없이 순전히 환경적 이유로만 엄마는 늘 '할 수 있어.' 라고 말했다. 덕분에 아이는 대부분의 것들은 혼자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가끔은 너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건 아닌지 스스로 돌아볼 때도 있지만 아이가 뭐든 실패를 딛고 스스로 성취하는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건 이점이 더 많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나처럼 아이가 많거나 워킹맘이거나 혹은 자신의 시간을 쓰는 걸 당연히 여기는 부모가 되는 것은 장점이 많다. 비자발적으로 잔소리를 덜하게 되면서 아이 스스로 무엇이든 시도해보고 결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아이를 믿게 되고 기다려주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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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느라 큰 아이에게 학습량을 정해주고 알아서 하도록 둔다. 간섭해봐야 별 소용도 없다. 결국 공부도 스스로 하는 것이다.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시험을 대신 볼 수는 없지 않는가. 아직 한창 아이를 키우는 중이라 이것이 정답입니다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나를 위해서도 아이를 위해서 믿어주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딸아. 너는 공부를 하거라. 나는 책을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