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앞에서 떼쓰는 아이

원장님 앞에서도 훈육할 수 있는 이유

by 로지

당신은 칭찬을 잘 하는 사람인가요?

칭찬의 타이밍인 걸 알지만 입 안에서만 맴돌고 마는 상황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가식적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잘 보이려고 입에 발린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망설이는 순간 칭찬의 타이밍은 지나간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상황을 놓치고나면 남는 건 후회밖에 없다. 곁에서 멋지게 진심으로 칭찬하는 이가 있기라도 하면 내 모습은 조금 더 우스워진다. 맞장구를 쳐도 나의 공감은 이미 신뢰를 잃었다. 왜 나는 그렇게 마음껏 칭찬해 주지 못했는지. 후회만 할 뿐이다.


부정적 피드백을 주는 것은 칭찬에 비해 훨씬 까다롭고 어렵다. 못할 말로 칭찬이야 타이밍을 놓치면 조금 뻘줌하지만 나쁜 사람이 되는 건 아니지 않는가. 잘못에 대한 피드백은 잘못하면 '지적질'이 된다.

나는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두려워 동료의 잘못을 덮고 그 일까지 끌어안는 사람을 알고 있다. 일은 잘못한 동료는 퇴근시간 전에 이미 화장을 고치고 시계바늘이 6시에 닿기가 무섭게 회사를 나선다. 반면에 그 일을 끌어안은 그녀는 저녁도 굶어가며 야근 중이다. 그래야 다음 날 업무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도저히 일을 멈출 수가 없다. 그 사람은 바로 나다.


나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바르게 잡는 것에 무척 두려움을 느낀다. 유년의 아픈 기억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걸 깨닫기 전에는 내가 그러고 있는지도 몰랐다. 꼭 나처럼 어떤 트라우마를 가져야만 부정적 피드백을 어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싫은 소리는 누군가 대신 해 주길 기다린다. '내가 해야지' 하고 먼저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그 결과 나는 어딜가나 일복이 터진 사람이었다. 야근은 필수. 주말 출근은 옵션. 집에 일거리를 가져와 추가 업무를 하는 건 기본이었다.






단호하게 잘못을 바로잡는 건 사회생활에도 필요한 일이지만 아이들을 키울 때도 꼭 필요한 일이다. 부모가 잘못된 행동을 눈감고 넘어가버리면 아이는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알지 못한다. 언제까지 품안에서만 키울 생각이 아니라면 바르게 알려줘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도 부모도 불행해질 수 밖에 없다.

평생 다른 이의 잘못을 앞에서 이야기해 본 적이 없는 나는 훈육의 상황이 더욱 당황스러웠다. 자칫 훈육을 빙자한 학대가 아닐지 그 경계가 늘 모호하게 느껴졌다. 어디까지가 단호함이고 어디까지가 권위적인걸까? 수치로 딱 이만큼이면 적합! 하고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싶었다.



Photo by Caleb Woods on Unsplash



첫째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다. 아이는 등원을 무척 힘들어했다. 막상 들어가면 언제 울었냐는 듯 너무도 신나게 잘 논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막상 아이가 울고 떼쓰며 가지 않겠다고 하면 엄마는 약해진다. 특히 초반에는 나 스스로도 아이를 기관에 보내는 것에 있어 죄책감이 있었기에 아이의 떼씀과 함께 망설임도 길었다. '둘째가 생겼다지만 이렇게 어린데 꼭 보내야하는걸까?' '나 편하자고 아이에게 힘든 경험을 시키는 것은 아닐까?' '동생이 생겨서라고 깨닫는 순간 동생을 미워하진 않을까?' 이러한 망설임으로 아이가 적응하는 기간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말았다. 훈육의 기준도 등원을 해야하는 이유도 무엇하나 명확한 것이 없는 때였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가 자랐다. 나도 같이 자랐다. 양육에 원칙을 세우고 지키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해졌다. 단호함의 선이 정해졌고 어디까지가 훈육의 범위인지가 명확했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되었다. 조언은 참고만 할 뿐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도 생겼다.


Photo by Marco Albuquerque on Unsplash


어린이집 앞. 들어가지 않겠다며 떼쓰는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혹은 다른 요구 사항(예컨데 장난감을 사달라)을 내세우며 약속해주기 전까지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엄마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너, 집에 가면 혼날줄 알아!"

왜 집에 가서 혼나는 걸까? 잘못에 대한 피드백은 즉시 그 자리에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아이가 어릴수록 사건의 연관성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바로 잘못을 알아차리는 것이 꼭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 '아까 너가 그런 건 잘못된 행동이야' 백 번을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다. 아이는 그냥 싫은 소리를 들은 것 뿐이다.


그 자리에서 즉각 혼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엄마들과 원장님이 보고 있기 때문이다. 훈육을 하는 중에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혹시 혼내는 모습을 다른 엄마들이 나쁘게 보지는 않을까? 아이들 훈육에 있어서는 베테랑인 원장님 앞에서 책잡히진 않을까? 그런 마음들이 그 자리에서 아이를 바르게 훈육해야하는 것을 뒤로 미루게 한다.


"이 언니는 원장님 앞에서도 데리고 가서 훈육하는 사람이잖아. 장난아니야."

아이 친구 엄마가 하는 말을 듣고 알았다. 원장님 앞에서 훈육하는 엄마가 흔하지 않구나. 깨닫고 보니 어린이집 앞에서 실랑이하지 않는 부모가 없었다. 심지어 드러눕는 아이에게도 훈육은 커녕 "집에 가면 혼난다."만 반복하고 있었다. 누구도 그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안다. 아이에게 훈육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절절 매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하는 게 아닐까?



Photo by Matt Nelson on Unsplash


다음은 <실리콘 벨리의 팀장들>에 나온 이야기이다.

저자는 강아지를 끔찍하게 아꼈지만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거리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중에 생긴 일이다.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상황에서도 강아지는 달려 나가겠다고 끈을 잡아당겼다.

"제발 좀 앉아. 금방 파란불로 바뀔 거야."

아무리 애원해도 강아지는 도로로 뛰어들 기세였다. 사고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그 때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이렇게 말한다.

"강아지를 정말 사랑하시나 보군요."

저자는 그 한 마디에서 그의 관심과 함부로 판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앉는 법을 가르치지 않으면 강아지는 언젠가 죽고 말 겁니다!"
곧이어 남자는 강아지를 향해 크고 단호한 목소리로 "앉아!" 하고 외쳤다. 놀랍게도 강아지는 그 자리에 앉았다.

"혼내는 게 아닙니다. 분명하게 알려주는 거죠!"

이윽고 신호등이 바뀌었고, 그는 소중한 조언을 남기고 사라졌다.


'혼내는 게 아닙니다. 분명하게 알려주는 거죠.' 이 말은 부모들에게도 꼭 필요한 말이다. 누가 보고 있더라도 어떤 상황이더라도 내 아이에게 꼭 필요한 조언이라면 정확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그 정도의 고민도 없이 훈육을 함부로 하면 그건 '화풀이 혼내기'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물론 사람이니 감정을 매번 배제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감정이 담긴 화풀이를 할 때도 있다. 잘못했다면 바로 인정하고 사과하자. '미안해. 이번엔 엄마가 화를 냈어. 엄마가 잘못한 거야. 정말 미안해.' 실수는 할 수 있다. 인정하면 된다. 그리고 다시 바르게 훈육하자.

훈육하고자 했을 때 잠깐만 숨을 고르고 생각해보라. 순간 이동처럼 장소를 어린이집 앞으로 옮긴다해도 훈육의 과정을 이어갈 수 있는가? 'yes'라고 대답한다면 그 훈육은 필요한 것이다. 바르게 알려주는 중임에 확신을 가져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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