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달리기

무언가 빠르게 하고 있으면서도 얼마든지 마음을 챙길 수 있다

by 로지

"오랜만에 뛸까?"

연휴와 함께 찾아온 남편의 알레르기 반응으로(몸에 열이 오르면 심해지니 운동도 쉬었다) 열흘 가까이 쉬어버린 달리기. 가볍지 않은 몸을 정비할 필요를 느껴 함께 나갔다.

부부는 각자 체력이 달라 둘이 함께 뛰면 늘 남편은 가볍게 몸 풀고 오는 정도라며 많이 힘들어하지 않았다. 반대로 나는 씻을 힘도 없을 만큼 넉다운이 되어 돌아온다.

어느 날 우연히 둘의 체력 차이를 극복할 방법을 찾았다. "여보가 저길 한 바퀴 더 뛰어서 따라오는 건 어때?" 라면 내지른 도발이 둘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코스 중간에 500미터가량을 남편이 더 뛰는 걸 제안한 것이다.


처음 시작! 하는 순간부터 둘의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나는 '내가 아무리 못 뛰긴 하지만 500미터야. 그걸 따라 잡힐 순 없지.' 하는 마음으로 이를 꽉 물고 달린다. 남편은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며 최선을 다해 뛴다. 둘이 나란히 뛰는 건 아니지만 5킬로가량의 거리를 같이 달리는 것보다 더 함께 달리는 것처럼 달린다. 서로가 어디쯤 뛰고 있을까를 상상하며 함께 달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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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Zac Ong on Unsplash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렇게 뛰는 데는 생각보다 굳건한 믿음이 필요하다. 걱정인형이라 불릴 만큼 걱정이 많았던 나는 별별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간다. '누군가랑 부딪혀서 다치진 않을까?' '발목을 접질리진 않을까?' '목줄 관리 안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개에게 물리진 않을까?' '남편이 운동화 끈을 다시 묶지 않았는데 괜찮을까?' '길이 엇갈리진 않을까?' '무슨 일이 생기진 않겠지?'

핸드폰은 남편이 가지고 뛰고 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을 살아봤던 세대임에도 서로에게 바로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작은 두려움이 되어 언제고 머리를 치켜들 기회를 엿본다. 서로가 무사히 코스를 완주할 거라는, 그래서 만나기로 한 지점에서는 이변 없이 만나질 거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에는 저글링을 하는 스님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여전히 조급해하며 공 각각의 오르내림을 수정하고 또 과잉 수정하며 미친 듯이 노력하고 있었다. 각각의 공이 같은 속도로 부드럽게 오르내리게 하려면 실로 진정한 의미의 이완과 여유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 날은 불현듯 노력하는 것 자체를 잊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실제로 그냥 잊었다. 다른 것을 잠시 골똘히 생각하다가 저글링을 시작하고는 평소와 달리 노력하지도 않았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하거나 예상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공을 던져 올리고 저글링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참으로 비범하고도 신기했다. 실제로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한 장면과도 같았다. 내 앞에서 완전한 시간 왜곡이 펼쳐졌다. 물론 나는 수업이 명상을 하면서 50분을 5분처럼 느끼는 경험을 수차례 했고 5분을 50분처럼 느끼는 경험은 더욱 많이 했다. 하지만 이렇게 일상적인 활동을 하면서 (저글링을 일상 활동이라고 치자면) 그렇게 명료하게 시간 왜곡을 경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당신이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 p.206




숨이 턱까지 아니 심장이 목구멍에 걸려 곧 튀어나올 것처럼 힘이 든다. 우습게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남편에게 따라 잡히고 싶지 않다는 것. 몹쓸 승부욕 같으니라고! 떨어지지 않는 다리를 움직여 또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모든 노력이 필요하지 않아 졌다. 몸이 알아서 움직이는 듯했고, 힘들지만 힘든 나를 바라보는 내가 따로 존재한다. 수없이 많은 생각과 두려움이 치솟아 오르는 것들을 지켜본다. 내 안에 이런 생각들이 자리하고 있구나. 뭔가 탁하고 껍질이 깨지는 순간이다. 내게 떨어져 지켜보는 이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기에 있기도 했다. 신기한 경험이다.


<움직임의 힘>, <시작하기엔 늦지 않았을까> 등은 달리기의 이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운동이 최고의 항우울제라는 말을 하는 과학적 근거를 제외하고라도 달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무아지경을 경험하고 나면 그 말이 무슨 말인지 그냥 알아지고도 남는다. 거기에 현재에 머무르는 명상의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니. 달리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찾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마음 편히 쉬라며 맞춤으로 비까지 내려주니 편안하게 휴식을 며칠간 즐겨보련다. 기력이 회복되는 날. 최고의 움직이라고 할 수 있는 달리기를 다시 시작할 것이다. 수 일 내로 '즐거운 러닝이었어.' 남기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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