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을 걷는 여자 Aug 22. 2019

당신의 막말, 수령인 수취 거부!

나는 반바지를 입을 권리가 있다

 계곡으로 휴가를 떠났다. 태어난 지 두 달 된 어여쁜 조카와 우리 집 똥개까지 함께. 새로운 가족까지 합류한 첫 가족 여행에 심취한 탓일까. 예정에도 없던 입수식이 한바탕 치러졌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한 가족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신나게 웃어제꼈다. 행복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저녁에는 친목모임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오빠 하나, 언니 하나, 동갑 친구 하나, 그리고 나. 네 명이 만나는 모임이었다. 여행지에서 바로 출발해야 약속 시간을 겨우 맞출 수 있었기에 홀딱 젖은 옷은 벗어두고 가방에 남아있는 옷가지를 골라 입었다. 긴팔 셔츠와 반바지였다.

 

 대천에서 영등포로 향하는 열차는 일찌감치 만석. 입석 칸 구석에 쭈그려 앉아 두 시간 반을 달렸다. 지하철을 두어 번 더 갈아타 도착한 목적지에는 반가운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의 만남에 호들갑을 떨기도 잠시, 거슬리는 말 한마디가 뒤를 이었다.



-야, 너는 무슨 팬티를 입고 왔냐.



 말의 주인은 그날의 유일한 청일점이었다. 잠시 당황하여 나를 제외한 두 여성의 옷차림을 스윽 살폈다. 긴 바지. 긴치마. 아, 나만 짧네. 잠시 생각했으나 어라? 이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래 내 바지 좀 짧다, 근데 그게 여기서 무슨 문제지? 마음속에 거북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친한 사이에 던진 농담이란 것을 감안하고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으나 오랜만의 만남에 분위기를 흐리고 싶지 않았다. 바지를 끌어내리는 척하며 능청스레 한 마디를 던졌다.


 

-계곡에서 놀다 보니까 바지가 다 젖었는데 옷이 이것밖에 안 남았더라고. 아니, 내가 여기 오려고 휴가 갔다가 끝나자마자 기차 타고 바로 올라왔잖아.


-맞지, 맞지. 고생했어. 얼른 뭐라도 먹자.(친구)



사건은 일단 이렇게 일단락되는 듯했다.




 한 잔 두 잔, 맥주잔이 비워졌다. 둘러앉은 테이블 위로 그간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다양한 화제로 이야기가 오가던 중, 화살이 '이성 친구'로 넘어갔다.



-너는 뭐, 만나는 남자는 좀 없냐? (청일점 오빠)


-응, 만날 생각이 없는 건 아닌데 스스로 자신감이 좀 더 생기고 나면 그때 소개팅을 받던지 해보려고. (언니)


-네 자신감이 뭔데?


-뭐 지금 생각하는 기준으로는 다이어트?


-그래? 뭐 네가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이제는 뭐, 유지만 하려고. 이대로도 연애할 수 있으면 하는 거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양쪽의 입장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감을 얻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날 문제가 된 것은 자신감이니 뭐니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야, 너도 듣고만 있지 말고 운동 좀 해. 예전에는 외유내강이었는데 점점 외강내강이 되어가고 있어. 너도 이제 연애해야지.



  

응?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오빠의 입에서 너무나도 가볍게 튀어나온 한 마디가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 이상한 불똥은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동갑 친구에게 튀었다. 얼른 친구의 표정을 살폈다. 이미 만면에 가득한 민망한 미소.  



-아, 내가 알아서 뺄 거야! 나도 알아!



 친구가 장난스럽게 소리쳤다. 아마 반바지에 대한 언급을 들었을 때의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괜히 정색해서 분위기 흐리지 말자. 친구의 의도를 알기에 일단 스멀스멀 올라오는 화를 삼켰다. 하지만 아무리 다시 곱씹어봐도 예쁘게 해석될 수 없는 한 마디임에 분명했다.

 만약 언니가 그랬듯, 친구가 본인 입으로 '나는 외적인 모습으로부터 자기만족을 느껴.'라고 말했다면 (친하다고 해서 막말을 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나)어느 정도는 용납이 가능했을 수 있다. 오빠의 장난기는 익히 들 알고 있으니 '저 양반, 또 말 밉게 하네' 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해당 친구가 자신의 생각을 밝힌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정작 본인은 지금 모습 그대로 사랑받기를 원하면서 왜 별생각 없던 제삼자에게 다이어트를 강요하는 것인가. 마치 본인에게만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할 권리가 주어진 것처럼 그 이후로도 짐짓 장난스레 '살 빼!'를 남발하는 오빠가 나는 점점 불편해졌다.



 그 뒤로도 봇물 터지듯 오빠의 막말이 이어졌다. 요새 SNS를 하는 사람들치고 마음이 건강한 사람을 못 봤다느니, 친척 누가 졸업 사진을 올렸는데 자신이 싫어하는 류의 SNS을 하고 있었다느니, 아무것도 없으면서 있어 보이는 척을 한다느니 이야기를 늘어놓기에 가만히 듣고 있는데 오빠가 나를 바라보며 말미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왜? 너도 찔려?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넋을 잃어 말문이 막혔다. 에둘러가며 이야기했지만 결국 그 모든 게 나한테 하고 싶던 말이었나. 기억하고 싶은 일상을 하나둘 기록해온 내 일기장이 그의 한 마디에 허세 가득한 게시판 신세로 전락했다.

 물론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직업 특성상, 내가 공유하는 사진들이 누군가에게는 자랑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의 삶을 허영으로 부풀리고픈 생각은 없었으므로 그저 일상 기록용으로 간간히 SNS를 이용해왔었다. 그런데 나를 실제로 알고, 심지어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믿었던 사람이 되려 내 삶을 ‘빛 좋은 개살구'로 보고 있었다니. 내가 그간 보였던 모습이 그런 식으로 해석되고 있던 것인가. 충격이었다. 더 할 말이 없었다. 반박해야겠다는 생각은커녕 오해를 바로 잡아야겠다는 마음조차 사라졌다. 그냥 이대로 나를 곡해하도록 둬도 상관없겠다 생각했다. 오해를 풀기 위한 정성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 쏟는 게 맞다는 판단에서였다.



        

 술자리를 마무리하고 지하철 역으로 향하는 길. 복잡할 줄 알았던 머릿속이 오히려 차분했다. 말없이 터벅터벅 걸었다. 이미 미소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눈치를 채지 못했는지 오빠는 기어코 한 마디를 더했다.



-내가 예전에 네 동생이 반바지 입고 와서 얼마나 혼냈는데 어떻게 네가 또 반바지를 입고 오냐.



 말 끝에 희미하게 쯧쯔,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미 마음속 '내 사람 울타리' 안에서 그를 놓아준 뒤였다.

 안녕! 짧은 인사를 마치고 각자의 행선지로 흩어졌다.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는 하지 않았다. 지키고 싶지 않을 약속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왜 그가 내 반바지 차림을 아니꼬워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내가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 눈치 없이 반바지를 입고 갔는가? 나의 옷차림이 우리 모임의 가치를 훼손하였는가? 밤길이 위험하지 않느냐고? 그렇다면 한국의 모든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라 생각하며 늘 꽁꽁 싸매고 다녀야 하는가? 아니, 애초에 성범죄의 원인이 여성의 옷차림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납득할 수 없다. 막말로 내 반바지가 당신을 물어 뜯기라도 했냐고. 차라리 웃으며 내가 반바지를 입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세 가지만 대보라고 할 걸, 조금 후회도 된다.



 나에게는 반바지를 입을 권리가 있다.

 아집의 잣대에 등 떠밀려 지금의 나를 뒤엎을 필요성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 진정으로 서로를 위하지 않는 타인의 평가에 스스로 쌓아온 가치를 의심할 필요는 없다.

 장난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한 당신의 막말은 수취인 수령 거부다!




 







  




 

매거진의 이전글 20년 지기 친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